우리의 기본 전재가 하나 있는데요. ‘나는 불행하다, 나는 고독하다, 나는 외롭다’라는 전재를 가지고 사셔야 해요. 이 전재가 맞아요. 왜냐면 여러분들이 아프고 외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공감하지 못해요. 내가 너무 마음이 쓰린데, 옆에 친구가 와서 “알아. 괜찮아” 이렇게 위로를 해줘도 민감하신 분은 금방 알아요. 그 친구는 몰라요. 모르면서도 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진 내면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해요. 그런데 우리가 어휘를 쓰잖아요. ‘슬퍼’ ‘우울해’ ‘즐거워’ 이렇게 쓰다보니깐 다른 사람이 말하는 즐거움이 내가 느꼈던 그 즐거움과 비슷하리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절대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여러분들이 느꼈던 것을 아무도 못 느껴요. 그런데 우리가 왜 고마운 줄 아세요? 못 느끼는 놈이 밤새도록 나를 위로해주는 거예요. 그것을 아셔야 해요.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것은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나의 고독이, 나의 불행이, 나의 외로움이 달래진거에요. 그래서 진짜로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면, 그 사람이 나를 떠나려고 할 때 “지금까지 고마웠어.” 라고 얘길 해요. 하지만 우린 죽일 듯이 달려든단 말이에요.
남자친구 있어요? 남자친구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럴 땐, 눈물 흘리면서 고맙다고 해야 되는 거예요. 더 함께 있어주면 좋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을 내미는 것이고, 그 사람은 잡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관계인데. 만약에 한쪽에서 손을 놓는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손 잘라서 잡고 있을까?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려고 그래도 못 잡아요. 우리는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이해 되셨나요? 고마움을 느끼시나요? 느껴요?
홀로 남은 것은 당연한 거예요! 오버하질 말란 말이에요. 나는 외롭지 않고, 나는 사람들이랑 있어야한다는 이 오만을 버려야지, 우린 행복이 뭔지 안다니까요! 그냥 고마워해야 돼요. 그것을 잘 아셔야 되요, ‘나는 외롭다. 죽을 때까지 외롭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나의 고통도 몰라요.’ 그런데 내가 아파하니깐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고, 내가 웃으니깐 같이 웃어줄려 그래요. 그런 사람이 나한테 있는 거예요. 당연히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것이에요.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눈 감을 때, 그냥 눈 감구요.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여러분들은 그냥 태어 난거에요. 우린 그렇게 있다가 그렇게 가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나는 행복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라는 전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만해요.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떠날 때면 우리는 못 떠나게 하려고 찌르고, 상처를 줘요. 그러니깐, 누군가가 나에게 온건 너무 고마운 거예요. 아까 얘기 했듯이, 누군가가 떠나가면,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라고 해야 되는 거예요. 이 얘길 하다보면, 매번 그 사람이 고마운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아내라면, 남편이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안 들어 올 수 도 있었는데, 오늘 들어와서 고맙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죠, 당연히 일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야 된다고. 만약 안 들어오면 우린 뭐라고 그러죠? 온갖 안 좋은 말을 하죠. 이렇게 문제는 시작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남편을 가지죠? 못 가져요! 우린 내면조차 헤아리지 못해요. 남편이 우울하다고 생각할 때, 아내는 안다고 생각해요. 우린 몰라요! 그저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우울해보이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어차피 못 느끼니깐 난 몰라. 어쩔 수 없어’ 가 아니고, 옆에서 그냥 있어주며 헤아려 보려고 그러기. 그런데 헤아려지진 못해요. 여러분들은 그러실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만약에, 남편이 일주일 동안 안돌아 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 되요. 기다리다가 남편이 들어오면요? 따듯한 차라도 내드려야지. 그렇죠? 그리곤 고맙다고 들어와 줘서 해야겠죠? 그러실 수 있겠어요? 우린 보통 못 그러죠. 왜냐면 우린 이미 그 사람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린 이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두 분은 결국 행복하지 못해요. 남편이 불우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아플 수도 있고. 그런 건 생각 안 해보셨죠?...
아이도 똑같아요. 나에게 온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독립해서 떠날 때 있죠. 그럴 땐 이러는 거예요, 지금까지 엄마랑 있어주고 가급적 엄마 말 들어줄려 그래서 고맙다고.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사람은 타인을 소유하지 못해요. 나는 손을 내미는 것 밖에 못하죠. 너무 고맙죠? 너무 고마운 거예요. 프러포즈할 때 누군가 손을 내밀죠? 그리고 상대방이 잡죠? 그러면 고마운 거예요. 만약 상대방이 손을 빼려고 할 때 있죠? 그러면, 손이 떨면서, ‘이제 손을 때려나보다’ 라고 느끼죠? 그 사람이 살아서 떠나려니 깐 여러분들이 속상한지도 몰라요. 대게, 우리는 ‘살아서는 못 보내겠다!’ 혹은 ‘내 눈에 흙이 들어올 때까지 못 보내겠다!’ 라는 생각이란 말이죠.
만약에 한 여자가 남자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웃긴 건, 그 여자가 죽으면 용서 한다!? 대게 우린 살아서 다른 사람과 행복한 꼴을 못 봐요. 대체 이건 무슨 감정일까요? 뭘까요? 이건 소유에요. 사랑이 소유던가요? 사랑은 소유랑 반대란 말이에요. 이것이 진짜 우리가 행복에 대해 고민해야 될 때, 기본 전재에요.
기본전재는 ‘나는 고독하고 외롭다’ 이에요. 나의 고독을 아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낀다. 이것을 아셔야 되요. 그럴 때, 카페에 혼자 있는 것 이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그 시간에 친구가 앞에 앉았을 때, 고맙죠.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친구를 만나야 되는데. 우리는 대게 당연히 친구가 앞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이러면 우리는 오만해지는 거구요, 나중에 그 친구가 떠나려고 해요, 왜냐면 소유 당했다는 것처럼 불쾌한 경험은 없거든요.
기본전재는 ‘나는 고독하고 외롭다’ 이에요. 그러면은 어머니도 귀찮게 안 느껴진단 말이에요. 어머니가 자꾸 잔소리하면 귀찮죠?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당신은 외롭지 않은 거예요. 내가 처절하게 외롭다는 것을 알아야,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들어도 좋다는 거예요. 노을이 예쁠 때도 좋아요. “아... 오늘 노을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라고 느끼면요. 눈이 와도 좋은 거예요. 이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잖아요? 행복을 추구할 때 직감적으로 느껴야 되요. 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죠? 왜냐면 우린 불행하거든요. 우리 기본전재는 불행이고 고독이에요. 그런데 행복이 달아나는 것 같이 느끼시죠? 그것은 때때로 힘들어요. 이건 나 혼자 추구할 것이 아니에요. 카페에 혼자 앉아있을 때, 친구 또는 아는 사람이 와있었을 때 잠시 동안의 완화된 고통. 죽을 때까지 그것은 지워지지 않아요. 다시 또 기다릴 거예요, 늙어서도. 남편이 먼저 떠나갈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 누구도 떠나가는 사람을 잡을 순 없어요. 아이를 키울 때도 이렇게 키워야 되는 거예요.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거든요. 만약 저 사람은 내꺼다, 내 소유라고 했었을 때, 여러분은 그다음부터는 너무 힘들게 살게 되어 있어요.
역설적이지만, 행복의 출발은 내가 고독하고 불행하다는 자각을 해야 돼요.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하다. 처절하게 느꼈을 때, 처절하게 느껴졌을 때만 타인과 같이 있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서야 알게 될 거에요.
우린 덜 외롭나 봐요?! 덜 고통스러운가 봐요! 그러니깐 사람들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귀찮아하죠. 우리는 더 외로워져야 되요. 더 외로워야 노숙자 아저씨든 그 누구도 고맙다는 거. 여러분들이 만약에 혼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자그마치 한 달 동안 지하철을 탄다고 생각해보세요. 신문을 읽으시면서 문제들을 막 욕하시는 할아버지께서 타시면 너무 고맙죠?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히 여기는 거 같아요. 친구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을 해요. 행복은 누가 누리는지 아세요? 바닥까지 외로운 사람이, 바닥까지 외로운 사람이 누린단 말이에요. 이건 사실이라고요. 이럴 때만, 나한테만 잠자리 한 마리가 날려들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꽃 하나 폈을 때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아요.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한단 말이에요!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은 내가 불행하기 때문에 그래요. 애초에 에덴동산은 외로웠다라고 전 단언해요. 너무 고통스러운 공간이었을 거예요.
행복이 있는데, 나는 왜 행복을 잃어버린 거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외롭고, 불행하고, 고독해요. 인제, 이것만 가슴에 새겨도, 이 글을 읽는 게 끝나면, 여러분들은 세상에 대해 민감해 질 거예요. 나중에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길을 물으면, 너무 고마워질 거예요. 마음의 관념의 조작을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우린 외로우니깐. 그리고 우린 고독하고 그 누구도 내 속을 몰라요. 우린 착각을 한단 말이에요.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 그때의 그 느낌 때문에 상대방의 행복하다, 기쁘다고 했을 때 나는 연상을 할 뿐이에요. 달라요. 친구랑 영화만 봐도 알걸요? 서로 다른 부분에서 감명을 받을 때 말이에요.
여자 친구 혹은 아내가 나를 아는구나. 착가하지 마세요.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는 거예요. 짐작하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 구나. 그것이 정답이거든요. 그런데 모를 때도 있잖아요. 모를 때도 있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거기서부터 출발을 하는 겁니다.
일단 여러분들은 그것부터 출발하시면 성공하신 거예요. 자, 우리 자신을 축소 해봅시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모르게 아주 축소 해봅시다. 그럴 때 내가 왜 사람들이 필요한지.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거 있죠, 마치 통나무가 물에 동동 떠내려가다 누군가가 잡는 것처럼, 그때 여러분들은 행복이 뭔지를 알게 될 거에요. 이럴 때 우리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으셔야 해요. 나중에 눈 감을 때 정도 되면 다 알아요. 아무도 나를 안 쫓아와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쫓아가지도 못해요. 그때 돼서 알아요. 우리 이랬었구나. 해어질 때 보면 안단 말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떠날 때.
고독은 견디는 것이다.
고독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못된 거 같아요. 고독은 견디는 거예요.
예를 하나 들게요. ‘한 남자가 A여자와 사귀다 B여자를 보니 더 좋아 보여서 B여자를 좋아하게 됐어요.’ 이것과 ‘한 남자가 C여자와 사귀는데 아무리해도 서로 이해를 해주려고 안 해서 C여자와 헤어지고 아무여자도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 D여자를 만나서 사귀게 됐어요.’ 것과 다르죠?
이 두 가지의 다름을 알아야 되요. 두 번째 예에서 C여자와 헤어지고 아무것도 안 같은 외로운 상태를 견뎌야 되요. 그 견딘 만큼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할 수 있는 거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엄마와 baby상태에 되어있거든요.
첫사랑, 첫 여자는 그 남자와 어머니 사이의 탯줄을 끊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첫사랑과는 결혼을 안 해요. 피를 역긴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자존심 같은 거예요. ‘남자가 첫사랑인데 나랑 같이 사귀고 있다’ 이건 첫사랑이 아니란 말이에요. 첫사랑은 그 역할만 해주는 거예요.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면, 귀가를 늦게 하게 되고 엄마말도 안 듣게 되요. 첫 번째 예에서 A여자는 남자의 엄마와 끊어지게 해준 것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바로 B여자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두 번째 예에서 C여자와 헤어지고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느냐 마느냐가 어른이 되냐 안 되냐가 남자가 결정하는 거예요. 하지만 대게 남자들은 첫 번째 예와 같이 여자들을 갈아타다가 그냥 그렇게 살게 되는데, 두 번째 예와 같이 한 여자와 헤어지면 그 여잘 잊어버리고 혼자 고독을 견디다 다른 여자와 사귀게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에요. 이와 같이 고독을 견뎌보았나요? 이 고독은 즐기는 문제가 아니고 견디는 문제예요.
선배, 어머니, 아버지, 친구, 등 혼자 있을 땐 고독을 즐기는 게 아니에요. 말을 걸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거 모르시죠? 말 걸어보세요. 아닐 수 도 있어요. 하지만 말을 걸어보세요.
자! 우린 고독하고 외롭고 불행하다는 전재를 가지고 있어야 되요. 하지만 그 고독을 즐기는 건 아니에요. 견디는 거예요. 견딜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는 거고 성숙해지는 거예요. 아셨죠? 금방 누군가 떠났다고 외롭다고 심심하다고 누군가를 찾는다고 이러지 않는 것. Baby처럼 징징거리지 않기. 이게 성숙해지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하셔야 되요. 그렇게 하셨을 때, 여러분들은 어른이 되고 그 다음에 행복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할 수 있게 되죠.
다시 말할게요. 우린 외롭고 고독하다는 전재 하나, 그리고 그 깊이 여러분의 성숙도의 깊이고 그 깊이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다음부터는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시를 읽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거예요. 묘한 일이 일어지죠? 그죠? 책 하나를 딱 꺼내들었을 때 그 이야기가 날 위로해주는지 알아요. 그 때부터요. 왜 우리가 책이 잘 안 읽히는지 아세요? 우리는 어리기 때문이에요. 진짜 외롭게, 외로운 그 상태에서 서점에가 봐요. 그게 얼마나 황홀한 건지. 어느 작가의 글을 볼 때 그 외로웠던 시간이 흘러가게 되는 거예요. 너무 재밌게. 이렇게 책을 읽는 거예요. 아직은 내가 책을 안 읽을 나이일지도 몰라요. 언제 책이 잘 읽히는지 아세요? 실연됐을 때. 그럴 때 안 읽던 책을 읽게 되고, 안 듣던 다른 장르의 노래를 듣게 되는 거예요. 여자와 남자, 둘이 다 아주 힘들게 외로워서 만나게 얼마나 좋을까요?
아주 힘들게 외롭고 고독했던 사람들은 어떤지 아세요? 고독을 견딘 사람들은 성숙하다 그랬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는 거죠. 얼마나 고마워요? 여러분들이 너무나 힘들고 외로울 때 부모님의 잔소리가 들린단 말이에요. 여러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가치에요. ‘나는 주변이 항상 사람들과 친구들이 많아.’, 이것은 어린애에요. 혼자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니까요!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얘길 해도 듣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에요. 이게 정말 소중한 일이죠. 고독은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겁니다.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독해져야 합니다. 아주 강도 높게 하면 할수록 고독의 연습들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어요. 분명해요. 그런데 고독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지고, 너무 빨리 결혼을 하고, 너무 빨리 아이를 낳아버린다고.. 고독을 내가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우린 너무 무서워한단 말이에요. 이것을 감당하셔야 되요.
우리가 공동체를 꾸밀 때가 있을 때 참 다른 거죠. 그러니깐, 공동체는 개개인의 고독이 확보되어 있어야 되고요. 확보되지 않는 공동체는 바삐 움직여야 되면 우리는 안 돼요. 자유의 내용을 아세요? 고독할 수 있는 시간과 가치란 말이에요. 낮에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여기에 고독이 어디에 있어요?! 고독의 시간이 종료되거든요. 여러분들이 자유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고독의 시간이 있다는 거예요. 100%. 공동체가 고독을 허용해야 된다는 거. 집이 왜 갑갑한지 아세요? 고독할 시간을 않주기 때문이죠.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고독할 때 그 고독을 터치 안합니다. 바보들만 “무슨 일이야? 얘기해봐!”이러죠. 그런 사람은 빨리 헤어지세요. 진짜 힘들거든요. 나와 무관하게 자기세계에 들어오는 걸 우린 못 견뎌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자유를 인정 안 하는 거예요. 말하게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세요? 법에서 중요한 게 묵비권이에요. 말하게 하는 방법 중 유명한건 고문이잖아요. 침묵의 권리, 이것이 확보되는 공동체가 있을까.. 그러니깐 우리한테 공동체는요 개돼지들이 집단으로 있는 게 아니에요. 친구 둘이 막 떠들게 되면 나는 저 친구들이랑 있어서 침묵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어쩌면, 상대방이 고독하게 있는 거 보면 힘들죠? ‘나랑 좀 얘기를 해주지’, 이래도 얘기 안하기. 그것을 견뎌내기. 이게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가치죠. 고독할 권리. 타인을 배려한다면, 침묵할 권리를 줘야 되고 고독할 시간을 줘야 되고 고독을 깨지 않아야 되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세요? 왜냐하면 모든 어른은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에. 고독의 깊이를 깨달은 분이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이 부모의 고독을 해치죠? 책을 읽거나, 음악 듣고, 시를 읽을 때 아이들이 그 고독할 시간을 해치죠? 만약 아이가 성숙해지면, ‘엄마 건들이지 말아야지’ 하며 아이는 조심히 지나가죠. 성숙이 그거에요. 나 자신의 고독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독에 침묵하고 힘들지만 견뎌낼 수 있느냐. 이게 또 하나의 잣대죠. 일단, 그것을 마음속에 아려 새겨야 하거든요. 인문학을 공부하거나 문학을 공부하거나 기타 등등을 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건 고독이에요. 일단 내가 고독해야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깐. 고맙게.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그래서 이제 행복이라는 게 대충 어떤 모습인지 알겠죠? 고독한 내가 고통으로부터 완화시켜주는 상대 혹은 애완동물이여도 상관없어요. 영화, 소설, 음악, 사람이여도 좋아요.
알랭 바디우 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라는 말을 해요. 이 정의에 맞게 사랑하시는 분은 5%로도 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무슨 뜻이냐면, 두 사람이 주인공 인거에요. 예를 들어, 남녀관계로 따지면, 내가 남자주인공 그 사람은 여자주인공이 되는 거죠. 주인공이 뭔지 아시죠? 주연이에요! 조연이 아니라는 거예요! 둘의 경험은 둘이가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에요.
분명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서 여자 친구는 나와 같이 있어주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의 욕심이 뭔지 아시죠? 저 남자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저 여자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거란 말이에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이 세상에서 언제 있어요?! 여러분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1차적인 느낌들이 뭐냐 하면 그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뒤로 그 사람 뒤로 물러나요. 예를 들면, 어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도 사랑하는 남자는 보인단 말이에요. 그런데 자꾸 다른 남자들이 보이게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왜 다른 사람을 잘 대해주나요?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그 사람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길 원하기 때문이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언제해요?! 아이를 키울 때도 똑같은 거예요. 아이가 주인공이 되야되요. 그런데 어머니가 오버를 해서 옆집 아이와 비교를 하고 일등 하는 아이와 비교를 해요. 더 이상 이 아이는 주인고이 아니죠? 그 아이가 왜 집에 들어가겠어요? 나 같으면 음악실이나 피씨 방에 가겠다. 우리는 주인공이 되는 곳으로 가요.
만약에 어떤 공동체나 회사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곳으로 갈 거예요? 아니면 노예로 만드는 쪽으로 가실건가요?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비하하는 쪽으로는 안 간단 말이에요. 나를 비하하는 친구나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어 하겠어요? 안 간다고요. 한 남자가 결혼을 해도 아버지역할을 못할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아들이랑 같이 토요일에 축구하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지금 이일만 승취하면 승진시켜주겠다며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실래요? 만약에 아들과 약속을 안 지키고 회사에 가면 아들은 아버지 존경 안 해요. 왜냐면 아들이 중심이 아닌 거죠.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갔다고 나중에 변명할 수 있죠.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게 될 거예요. 아들이 주인공이여야 되는 거예요. 주인공을 버리고 주연한테 갈 거예요? 누가 주인공이고 주연이죠? 그걸 아셔야 되요.
혹시 딸이나 아들 있으세요? 빨리 장가를 보내는 방법을 아세요? 계속 괴롭히면 누군가가 조금만 잘해줘도 그 사람한테 장가가게 되어있어요. 이렇게 되면 행복의 잣대가 너무 낫게 되어 그것밖에 살지 못 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딸을 너무 행복하게 주인공으로 만들어 키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이상으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말이에요.
우린 언제 제일 행복하죠? 누군가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때죠? 예를 들어, 이벤트를 해주면 행복해 하게 되는데 이벤트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니깐 행복한 거예요. 무슨 말인 줄 알죠? 사랑을 하다 깨어져버리면 왜 힘든 줄 아세요? 자기가 주인공인 순간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깐 간절해지죠. 그 누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까? 이게 우리가 찾는 거예요.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 나의 자존감을 훼손치 않는 것인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최고의 고민이 뭐일 거 같아요? 성생활이에요. 이걸 아셔야 되요. 죽을 때까지 남자 여자는 사랑하고 싶어 하나 봐요.
결혼하고 나면 편해졌다고 옷도 마음대로 벗고, 방귀도 끼고 막 그래도 되는 거예요? 막 해도 되는 거예요? 남편이든 아내든 먼저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뭐라도 해서 주인공을 반기는 게 맞는 거죠? 그건 이상한 문제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밥 항상 해주시죠? 아파도 해주시죠? 그런데 아프면 하면 안 돼요. 만약에 어머니가 밥을 안 해주면 우리는 왜 안 해주냐고 물어보겠죠? 아프다고 말하면 우리는 혼자 밥을 차려서 먹어야 되는 게예요. 그렇게 해야, 나중에 어머니가 밥을 해줘도 고맙다고 여기게 되는 거예요. 이걸 아셔야 되요. 여러분들이 스스로 주인이 안 되면 주인대접 못 받아요.
아 진짜 힘든 거예요. 누군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거. 그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주인공 대접을 받나요? 왜 사랑이 매력적이냐면, 내가 주인공이 되기 때문 인거에요. 그래서 결혼생활이 위험한 거예요. 결혼생활은 자기가 주인공 되기가 쉽기 않기 때문이죠. 너무 편해지게 되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걸 잊어버리게 될 수 도 있고 자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아내 혹은 남편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죠.
그래서 황지우 시인이 했던 말이 맞는 거예요.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대해주죠? 헌신적으로? 잘 해준다함은 주인공으로 만들어줌 이죠? 자존감을 해치지 않는 거고요. 너는 너를 결정할 수 있고요. 너는 당당한 사람이고요. 이걸 보여주는 거죠. 음식점에 가서도 음식을 그냥 시키는 게 아니라 뭐 먹고 싶니 라고 먼저 묻는 게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죠? 당연한 거죠?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왜 그렇게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냐고요? 왜냐면 그렇게 해야만 그 사람이 나를 주인공으로 대해주기 때문이죠. 황지우 시인은 한마디 더 말하죠. ‘이기적인 사람은 이타적이진 않아요.’ 이타심은 이기심이지만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 주인공으로 대해줄 때 우리는 행복을 느껴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끼죠. 여러분은 여러분 삶의 주인공이세요?
사랑 = 자유 → 행복
사랑을 하면요 그 사람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요. 내가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든다고요.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거든요. 자유는 주인의 것이죠. 그렇죠?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에요. 어떤 교수가 묻더군요. “어떻게 사랑과 자유의 뜻은 모순되는데 어떻게 같다는 거죠?” 여러분들 아시죠? 사랑은 그 사람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 어른만이, 독립된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비겁하고 겁이 많아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걸어가는데 깡패들이 우릴 둘러쌀 때 깡패들이 말하길 무릎을 꿇으라고. 여러분들이 저 사람이면 무릎 꿇어요? 싸운다니깐! 여자 친구랑 안 가기만해도 백번이라도 꿇을 내가 싸운다니깐 요?!
거꾸로 말해도 되요 자유롭고 주인인 사람만이 사랑을 해야 되죠. 힘들지도 몰라요. 사랑하면요 자유를 배워야 되요. 사랑해도 되요. 대신 남자든 여자든 빨리 결혼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완전 강해져서 자유를 알 때 그때쯤 돼서 결혼해야 되요. 이제 사랑과 자유가 왜 같은 줄 아시겠죠? 왜 부모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되죠? 자본으로부터 왜 독립해야 돼요? 사랑해야 되니깐. 기본 조건이라고요! 잘못하면 아이도 사랑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사랑을 하면 자유로워야 되는 것을 알게 돼 있어요.
회사 사장이 카톡 하나 왔다고 아들과 약속한 것을 깨버리고 회사로 곧장 가실건가요? 사랑하는 아들이 앞에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텐데? 나중에 변명해도 아들은 직감적으로 알텐데? 이걸 정확히 하셔야되요.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어른들 이신가요? 여러분들을 감당하시나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나요? 행복해지는거 더럽게 힘들어요! 어떻게 보면 ‘인간은 고독하다’ 라는 건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은 쉬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주인공으로 만들어라’를 같이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진짜 힘들어요. 사랑하는거 지키기 힘들어요... 내가 비겁해서, 사랑하는거 지키기 너무 힘들단 말이에요. 아셨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본에도 타협하지 않고, 관섭에도 타협하지 것. 당연히 회사엔 CEO가 있고 그의 말대로 해야 되고, 당연히 나라는 권력이 있어서 그 권력을 따라야하고, 등등 이렇게 생각하는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가 있어요? 우린 대게 대충 타협하면서 사는거 일지도 몰라요. 사랑한다는거와 사랑한다는 제스처를 하는 것을 달라요.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라는게 정말 무섭죠? 그래서 우리는 맞서 싸워야해요. 어떻게 하면 주인공으로 만들까하면서 우리는 맞써 싸워야해요. 만약에 감당이 않되면 누구를 불행하게 하는거에요. 까먹지 마세요! 나 때문에 그 사람이 불행해지는거에요. 이렇게 생각해도 되요.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이 사람은 충분히 주인공으로 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참의 의식을 가지고 사시는 것이 더 정직해요.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가지면 절대 않된다는거에요!
몇 프로를 감당할까요? 사랑과 자유가 같다는 거. 어른만이 사랑해야 된 다는 거. 주인만이 사랑해야 된 다라 거.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키는 사람만이 사랑해야 된다는 거. 사랑은 항상 우리에게 얘기하고 상대방은 우릴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여러분들은 나가면 노예행세를 하잖아요. 상대방이 애써서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면 주인공으로 살아야지! 바로 끝나자마자 굽실굽실 거리고 그리고 나선 “너를 위해서”라고 합리화 시키죠. 뭐가 너를 위한 겁니까? 자지가 무서워 놓고서. 이런 자각에 우리가 어떻게 반성할 수 있을까 이게 문제죠.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해요. 왜냐면 저 과정으로 인해 누군가가 자유로워지고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죠. 너무 멋있잖아요.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여자 분들도 사랑하게 되면 과감하게 부모님말도 어기잖아요. 그렇죠? 부모님 돈도 훔치고.
인생에 있어서 자지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사랑이에요.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감당하는 것은 사랑이에요. 자긍심, 자존심이에요. 아셨죠? 내가 살만한 가치가 있고 나는 주인공 이고 이런 거를 가르쳐 주는 게 사랑이라고요. 그래서 매력적이라고요. 바로 그 부분이 없어졌을 때,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떠들어도 사랑은 없는 거예요. 둘을 경험하고 있을때만 사랑이라고 얘길할 수 있는거라고요. 사랑하는거 정말 힘들어요. 스피노자가 혼자 에티카를 딱 쓰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죠. “행복이라는게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다면...” 그렇죠? 행복에 도달한 사람은 별로 없어요.
첫째, 고독에 대한 가치와 외로움에 대한 가치를 기억하세요. 이건 정말 도움되요. 왜녀하면 외로움을 견딘다는 것은 주인공이 주인공이 됬다라는 얘기에요. “놀아줘” 이러지 않는다는거에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가치에요. 외로울 때 전화걸지 않기. 무슨 소리인줄 알죠? 외로운건 외로운 거니까. 이게 주인공되는 하나의 연습일테고 그게 없으면 누구 사랑하면 않되. 놀아주는 사람이 애인 인가요? 나를 재밌게 해주는 사람이? 그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엄격한 잣대를 기억하세요. 사랑하는 감정에 있어서 둘의 경험이다. 여기서 사랑과 자유가 무엇인지. 사랑은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거에요 주인공으로. 그리고 그 사람이 자유로와 졌을 때 내가 주인공이 되는. 아셧죠?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남녀관계, 자식관계, 인간관계, 등등. 어떤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면 사랑한거에요. 그 작가를 우리가 어떻게 떠나요. 작가가 쓴 글만 보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데? 모든지 그래요. 이러한 가치들을 절대 잊지 마세요.
로널드 레이건은 2휴 영화배우로 시작해서 50년대에 기업홍보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소명을 받았고, Wall Street는 그들이 찾던 인물을 구했다. 은행과 기업들의 계획은 간단 했다. 그들을 섬길 새 미국을 만드는 것. 그렇게 하려면 홍보모델을 대통령에 앉혀야 했죠. 1980년 11월 4일, 그게 이루어졌다. 역사적인 순간 이였다. 왜냐하면 주식회사 미국과 wall street가 완전히 주도권을 잡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옆에는 돈 리건 이라는 세계 최대의 소매중개회사 메릴린치사의 회장이다. 그는 재무부장관에 임명돼서, 부자들이 원했던 감세 법안을 제출했다. 그 뒤에 리건은 백악관 비서실장에 올랐다. 동시에 대통령 힘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국가가 회사처럼 운영되기 시작된다. 4년뒤에, 레이건은 재선에 출마한다. 온통 웃는 얼굴에 즐거운 말들뿐이었다. 사실, 레이건이 한일은 산업 하부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친 거였다. 이건 돈을 아끼거나 경쟁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들은 그때도 이미 수십,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었거든. 단기 이윤을 노린 거였다. 제너럴모터스에선, 흑자 241억 달러와 해고 10만명+. AT&T 에선, 흑자 96억달러와 해고 4만명+. 제너럴일텍느릭에선, 흑자 204억달러와 해고 10만명+. 그리고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서요. 수백만명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남은 노동자들은 두배로 열심히 일했다 (생산성 45%+). 하지만 노동계층 임금은 동결됐다 (노동계층 임금 +1%). 미국 부유층의 최고 소득세율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우린 걸맞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대신에 돈을 꾸어 쓰는 게 좋을 줄 알았다. 가계부채가 GDP의 100%에 달하기 전까진 (가계부채 +111%)…… 개인파산이 급증했다 (파산 +610%). 수백만 시민을 철장에 가둬야 했다 (재소자 +355%). 항우울제 판매가 급등했고 (항우울제 +305%),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의 탐욕이 의료비 상승을 불렀다 (의료비 +78%). 이 모든 것이 주식시장과 미국 CEO들에겐 희소식이였다 (다우지수 +1371%) (CEO: 노동자 임금 비 +649%).
레이건 임기가 끝날 때쯤, 제너럴모터스사는 40억 달러가 넘는 순수익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수만 명을 해고했다. 그래서 감독은 전 제너럴모터스사의 수석 로비스트 톰 케이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물어보려고 갔다. 그가 말하길, “만약에 제너럴모터스가 부도 나면, 아무도 득 될게 없어요. 해 야할 일은 하는 거죠.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경제 상황에서요. 얼마든지 일자리를 줄여서라도 해 야할 일은 한다.” 제너럴모터스사는 거의 모든 일자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2009년 1월, 제너럴모터스사는 부도가 났다. 안타까운 사실은 다른 곳들도 이일 뒤에 따르기 시작했다.
35년 동안, 제너럴모터스사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결국, 독일과 일본이 자동차 산업을 재건해서 미국보다 안전하고 연비 좋은 차를 생산했다. 고장도 거의 안 났죠. 독일에선 노조가 이 사회 구성에 관여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회사 일에 발언권이 있죠. 일본과 독일 사람들은 보수정당이 중산층을 파괴하는 걸 가만두지 않았다.
2008년 크리스마스를 조금 앞두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리퍼블릭윈도앤도어 회사는 불시에 조합원 전부를 해고했다. 250명 이상을. 단지 사흘 전에 통지 했죠. 전국에서 이런 일이 반복됐는데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죠. 부시 대통령은 임기 끝자락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법의 단어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말하길, “자본주의는 여지껏 발명된 최상의 체제입니다. 좌우 진영 모두에서 자유기업 체제를 탐욕, 착취, 실패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줍니다. 직업을 선택할 자유, 행동을 선택할 자유…… 사회정의와 인간존엄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유시장 체제가 올바른 길입니다.”
펜실베니아 주 윌크스배리는 미국에서 청소년 수감 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이곳에 사는 선한 사람들이 자본조의적인 방법을 채택해서 그런 것 같네요.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을 상대로요. 이 군은 민간 영리기업을 고용하고 PA 아동보호라는 푸근한 이름을 붙였죠. 소유주는 두 사업가인데, 그 중 하나인 호버트 파월은 변호사이자 기업가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커내헌 판사가 공립 소년원을 폐쇄하고 PA 아동복지 건물을 짓게 해줬다. 그리고 군 정부에 비용을 청구했다. 한 청소년은 쇼핑몰에서 싸워서 신고되어 소년원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한 청소년은 미니홈피에서 교감 선생님이 엄격하고 유머감각이 없다고 놀려서 잡혀 들어가는 식으로 샤바렐라 판사는 불의를 계속 저질렀습니다. PA 아동보호의 공동 소유자 로버트 파월은 컨내헌 판사, 샤바렐라 판사와 거래를 했죠. 샤바렐라 판사가 선고 율을 높였습니다. 수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PA 아동복지의 영리 시설로 들어갔죠. 그들의 고통을 대가로 판사들은 260만 달러를 챙겼습니다. PA 아동복지의 소유자들은 이 군 주민들이 낸 세금, 수천만 달러를 받았죠. 파월이 돈을 다 어디에 썼냐고요? 개인 비행기를 사고, 요트를 샀죠. 6천 5백명 아이들이 부당한 처분을 받았습니다. 잘 나가는 사업이었죠 망하기 전까진 요. PA 아동보호와 판사들 모두가 감방을 채울 때 마다 그들 몫을 받았습니다. 재소자가 사회에 복귀할 준비가 됐는지 판단하는 건 그들이 고용한 직원들 일이었죠. 이상할 건 없습니다. 정부에서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 을 영리기업에 떠넘기는데, 뭘 기대하겠어요? 하지만 결국은 판사들과 같이 부당한 처분을 주고 돈을 챙겼던 사람들은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댄은 최근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부인과 두 아들을 남기고요. 하지만 어마는 애미지 은행이 댄에게 비밀 생명보험을 들었단 사실을 몰랐죠. 은행은 친절히 도 스스로를 수익자로 기입했습니다. 댄이 죽을 경우에요. 그런데 보험회사가 실수로 어마 씨에게 애미지 은행이 150만 달러를 수령한 사실을 알렸죠. 댄이 죽은 지 몇 주 뒤에요. 댄의 부인은 전혀 몰랐고 그리고 이런 보험정책이 왜 있는지 의아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댄의 부인, 어마는 이 지역의 변호사, 마이클 마이어스 씨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기업의 이런 보험정책을 조사하고 있었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반적인 생명보험의 경우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장의 죽음에 보상을 받을지라도 그 사람이 죽길 바라지 않죠. 이런 보험에 든 회사들은 직원의 죽음을 바라게 됩니다. 보험정책에 따라서요. 직원이 살아 살아있을 때 죽었을 때 더 값지니까요. 중개인이 쓴 보고서에 따르면 NCC의 직원 사망률은 기대치의 78%입니다. 죽었어야 했던 사람들의 78%밖에 안 죽었단 거죠. 또 문제는 그 중 셋이 자살 였단 겁니다. 사람들이 매년 자살하리란 보장은 없거든요. 그런 상황이 또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게 합법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당신 집에 화재보험을 들지 못하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그렇게 되면, 전 딴 사람 집에 불이 나는 데 투자한 거니까요. 마이어스 변호사는 수년 동안 이걸 연구해 왔습니다. 전 어떤 회사들이 이런 보험정책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지 물어봤죠. 그가 말하길, “저도 몰라요. 당신도 모르고요. 왜냐하면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요. 정보가 샌 회사들을 말씀 드리면, Bank of America, Citibank, WalMart, Winn Dixie, P&G, McDonnell Douglas, Hershey’s, Nestle, at&t, SBC, 아메리텍, American Express, 등등 잘나가는 회사들이 다 그렇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수백만 명이 이런 정책에 적용된 적이 한 번은 있을 겁니다. 알려진 건 빙산의 일각이지요.” 이런 종류의 보험에서 항상 공통적인 것은, 직원이 죽었을 때, 수익자가 고용주로 돼있다는 겁니다. 이걸 ‘Dead Peasants Insurance (죽은 일꾼 보험)’이라고 부른다. 정말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Peasants (일꾼)’ 이란 단어를 썼는진 궁금합니다. 알아 본 결과, 애미지 은행은 댄에게 죽은 일꾼 보험을 하나 더 들어뒀습니다. 그래서 총 500만 달러 정도를 받았죠.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린 미국 자본주의가 도덕적으로 옳다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체제의 핵심 요소인 사적 소유, 이윤동기, 경쟁시장이 하나같이 좋기 때문이죠. 그것은 신의 섭리와 성경 말씀과 일치합니다.” 우린 경쟁과 이윤이 좋은 거라고 배웠습니다. 만약에 수익 증가가 뜻하는 게 애들을 수감하거나 죽은 직원을 환금하는 거라면, 주주를 위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겠죠. 빛, 강제퇴거, 착취…… 우리는 어디에 충성을 맹세한 걸까요?! 이윤동기? 모든 선한 미국인들은 믿게 되었습니다. 자복주의 경제 체제가 성경말씀과 일치한다고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마태복음 19:30)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마태복음 19:23) 가장 보 잘 것 없는 자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40)
Citigroup은 3새의 비밀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거액 투자자를 위한 상황 보고서였죠. 그들이 내린 결론은 미국은 더 이상 민주국가가 아니라 금권주의 국가라는 겁니다. 사회가 오로지 상위 1%의 이익에 종사한단 거죠. 그들의 재력은 이미 하위 95%를 합친 것과 맞먹었습니다. 이 문서는 비분격차의 극대화가 새로운 귀족정치의 초석임을 설명하고 이 화려한 잔치가 영영 끝나지 않으리라고 점쳤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Citigroup에 따르면, 가장 잠재성 있는 단기적 위협은 사회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거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농민 반란이죠. Citigroup은 가난한 자들이 경제적인 권력은 없을지라도 부자와 같은 투표권을 행사한단 점을 염려했습니다. 일인일 표 원칙 말입니다. 그들이 진정 두려워한 것은 우리의 투표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99%의 표가 있고, 저들은 1%뿐이니까요. 그럼 왜 99%가 이걸 보고만 있냐고요? Citigroup에 따르면, 이는 유권자 대부분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자기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이죠. 부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데 흡족했습니다. 한편 부자들은, 가진 걸 나눌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칼럼니스트이자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의원인 스티븐 무어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주의가 항상 좋은 경제를 주진 못합니다. 심지어 정치도 그렇죠. 반면 자본주의는 선택의 자유를 줍니다. 뭐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죠. 그게 꼭 성공을 뜻하진 않습니다. 미국 헌법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단 걸 명심하세요!”
아.. 헌법이라……이 영화 감독은 평생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진짜인지 헌법 원문을 보러 갔죠. 그런데 거기엔 자유시장, 자유기업, 자본주의 같은 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영화 감독이 본건 죄다 “우리 인민”, “보다 완벽한 연합”, “국민 복지를 증진” 이런 거였죠. 복지, 연합, 우리?? 이건 다른 주의 같은데요? .. 아…… 민주주의네요. 그래서 이 영화 감독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직장이 민주적이라면 어떨까?” 국가와 사업의 운영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큰 괴리가 있죠. 민주주의를 그렇게 사랑한단 사람들이 직장에만 가면 기꺼이 독재를 감수하는 걸 보면요. 위스콘신주의 이스무스 공업 사는 좀 다릅니다. 이 회사는 산업로봇을 설계하고 만듭니다. 연 1천 5백만 달러까지 사업이죠. 이곳의 모든 노동자가 사업체의 주인입니다. 스톡옵션 나부랭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진짜 소유주란 겁니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이 사업체의 모든 구성원은 동등한 표와 발언권을 갖습니다. 수학 공식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직접 사업을 운영해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근사하죠? 이거야말로 애국 아닌가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직장에서도 실천했으니까요. 당신께서 일하는 곳이 당신과 동료들 손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동료들을 해고해서 당신 주가를 올리면 안 될까요? 아니면 자기 봉급을 올리고 동료들 걸 깍 거나요. 그런 건 안 통합니다. 남들이 다 지켜보고 있어서 못 하죠.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이 소매를 걷고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만약에 누구 하나가 꼭대기에 서서 돈을 더 받는다면 불공평한 거죠. 직장에서의 공평함이라…… 참신한 발상이죠.
캘리포니아 주에는 한 빵 공장이 있습니다. 이곳 노동자들은 매일 수천 개 빵을 굽죠. 협동체를 위해 더 많이 일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나누게 됩니다. 여기 노동자들은 행복해요. 많고 적고가 없습니다. 다 똑같죠. CEO도 똑같이 나눠가지죠. 남들 받는 만큼 요. 이게 우리 노동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입증됐죠. 이곳 라인 노동자 연봉이 6만 5천달러입니다. 아메리칸이글 사 조종사 초봉과 비교하면 3배 차이죠. 이런 식의 조직 활동도 가능하단 걸 깨닫고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조나스 소크 박사는 일생을 자신의 천재성을 이용해서 부귀를 누리는 대신에 원숭이 콩밭을 믹서에 갈면서 소아마비 치료제를 개발해서 그 치료법을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그에겐 부자가 될 기회가 수 도 없이 많았습니다. 개발한 백신을 제약회사에 팔았더라면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이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가 의사와 연구교수로서 버는 수입은 생계를 유지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안락한 삶을 살기에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신의 특허권 자는 사람들입니다. 특허랄게 없어요.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하지만 오늘날 가장 똑똑한 머리들은 다른 데 쓰이고 있습니다. 수학, 과학영재들이 어디로 진출할까요? 금융이죠. 그들은 미국 과학에 종사하지 않습니다. Wall street로 가죠. 요즘 학생들은 소크 박사 때와 달리, 대학을 졸업하려고 학자금 대출을 받습니다. 10만 달러 이상까지요. 이 학생들은 향후 20년 동안 은행에 빚을 집니다. 은행 빚을 갚는 최선의 방법은 거기서 일하는 거죠. 공익을 위해 일하는 대신에요. 이 엄청난 창조성을 가진 사람들을 그들을 필요로 하는 쪽에서 데려갑니다. 데려가서 그 일을 하도록 시키죠. 별로 창조적이지 못한 건 물론이고 실로 파괴적인 일을 하게끔요. 실제로 그들이 일을 하면 할수록 세상엔 해가 되죠. 그럼 요즘 명문대를 나온 영재들이 일한다는 그 분야가 정확히 어딘가요? 파생상품과 신용부도스와프 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이 용어들을 처음 들어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답을 찾기로 정했죠. 그러나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Wall Street에서 한 명을 찾았습니다. 마커스 하우프씨는 아이비리그 공대 출신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부회장을 지내고 Wall Street에서 15년을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들면서 일했죠. 파생상품이 뭔가요? 마커스 하우프씨는 설명을 하다가 헷갈려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아마도 하버드 대학 누군가가 쉽게 설명해줄지도 모르죠.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부, 전 IMF 경제수석 또한 설명을 정확하게 쉽게 하질 못합니다. 파생상품이란 건 복잡한 도박 기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수학공식이 있는데,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만들었죠, 그래서 책임 면하려는 거죠. 마커스 하우프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정부에서 일하는 변호사라면 이런 게 세법에 위반인지를 판단합니다 이런 걸 할 줄 알면 Wall Street에서 일자릴 줄 겁니다. 세상에 존재하기만 하면 거기에 대한 파생상품이 있죠.” 요즘 Wall Street는 광란의 카지노와 같습니다. 모든 것에 내기를 걸 수 있게 된 겁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마저도요.
그들이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재주는 신기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 볼까요? 먼저,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이 은행 주인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은행은 바로 집이라고요. 집 가격이 25만 달러라면, 당신에겐 현금이 그만큼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돈 방석에 앉은 거죠. 당신이 은행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당신만의 은행이요. 이 은행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냥 재투자 하는 거죠. 남들도 다 하죠. 물론 많은 재투자 광고 재일 구석진 곳에 어렵고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적혀져 있죠. 은행이 이자율을 올려서 빚 갚기가 어려우실지도 모른단 얘기. 뭐 어때요 못 갚으시면 그냥 집만 먹고 떨어질게요. 정말 어이가 없죠.
물론, 이런 짓을 하기 전에 법령과 규정을 손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존 길러런과 잘나가는 은행 로비스트 세 명과 연방 예금보험공사 기관장이 이미 손을 봤죠.
일리노이 주 피오리아의 해커 씨 부부는 어이없게 은행이 이자율을 마구잡이로 올려 빚을 못 갚게 되어서 은행에게 집을 내어주고 말아버립니다. 은행이 해커 씨 부부 같은 가족을 쫓아낼 때 집을 청소할 전문가를 고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은행사람들은 뭐 하러 큰돈 줘가면서 전문가를 고용하냐 해서, 헐값에도 해 줄 불쌍한 사람들을 상대로 일을 시키게 된다. 해커 씨 부부는 집을 뺏어간 은행을 위해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깐 전문가 대신에 헐값으로 자기가 은행에게 팔긴 자기집을 청소하는 거죠…… 그리고 1,000 달러를 준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거죠. 그런데 해커 씨는 이런 것 모르고 자기집을 치우면 1,000 달러를 은행에서 준다 길래 후다닥 일을 하게 되죠. 그리곤 그 은행에게 고맙다고 느낍니다...
밥 파인버그는 컨트리와이드 사의 VIP 고객을 관리합니다. 미국 최대의 담보대출 회사죠. 또한 컨트리와이드 사의 주특기 분야는 저소득 계층에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율로 대출해주는 거지만 밥의 일은 미국 정계의 엘리트들을 위한 겁니다. 밥 파인버그가 말하길, “어느 날 높은 분이 절 부르시더니, 안젤로씨의 친구분 좀 관리해드려라도 말하더군요. 안젤로씨는 컨트리 와이드 사의 CEO입니다. 그러더니 이자율 할인에다가 수수료는 깎아주고 가끔은 구비 서류도 면제해주라고 명령했죠. 문서에 공식적으로 ‘FOA’ 라고 썻죠. FOA = Friends of Angelo. 리처드 홀브룩 대사, 다나 샤레일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담보대출 시장을 규제하는 국회의원들, 주식시장을 규제하는 사람들, 짐 존슨 패니매 회장 (연방 저당권협회), 알폰소 잭슨,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상원 재정위원회 콘래드 의원…… 어느날 TV를 보는데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의원이 미국 노동계층을 지켜야 한다며 호언장담하는걸 보고선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한테 내준 수많은 대출에서 그는 회장님의 친구라는 이유로 온갖 할인과 좋은 혜택을 받았거든요. 상원 금융위원회는 담보대출 업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도드 의원은 현재 그 의장으로 28년 이상 위원회에 몸을 담았습니다. 안젤로 회장의 친구로서 그는 1백만 달러가 넘는 할인 대출을 받았습니다. 바로 옆에서 독이 든 대출상품을 누군가에게 피는 동안에 전 VIP에게 최상품을 팔고 있었던 거죠. 전 그게 뇌물이라곤 생각지 않았어요. 그냥 주어진 일을 한 거죠. VIP 담당으로서요. 회사 사람 전부가 제일을 알았어요. 한 명도 안 빼고요. 우쭐할 수 도 있었겠지만. 전 혀요, 잘못된 짓이란 생각도 안 들었어요. 제가 만약에 안 했어도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빌 블랙씨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그는 1980년도에 저축대부 의혹을 폭로한 금융감독관 중 하나입니다. 그는 감독관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의혹의 중심에 있던 찰스 키팅 (영화배우) 은 블랙을 어떻게 할 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실행 방법을 적어뒀죠. – 살해할 것! – 요즘은 이런 걸 누가 감시하냐고 물어봤습니다. FBI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FBI는 2004년 9월에 은행에 의해서 자행되는 담보대출 사기가 만연해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전염병적’이라는 표현을 써서요. 그런데 9.11 테라가 터지자 부시 행정부는 최소 500명의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 인력을 다른 부서에 배치했습니다. 부시 행정부 집권기에 화이트칼라 범죄가 역대 최고로 많이 일어났는데도 말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고였죠. FBI에 따르면, 담보대출 사기로 인한 피해의 80%를 빌려준 쪽에서 일으킨 겁니다. 그 뜻은, 돈 빌린 사람들이 사기 치고 다닌 게 아니란 얘기죠. 기관을 장악한 사람들이 사기를 친 겁니다. CEO들이죠. 그럼 CEO들은 그러고도 안 걸릴 줄 알았나 보죠? 실제로, 별일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자 엘리트들은 돈 잔치가 끝날 걸 적정했습니다. 국민에게서 떼먹은 게 수조 달러가 넘었죠. 주었던 집을 빼앗고, 병든 사람을 파산시키고, 소득과 연금을 주식시장이라는 도박장에 투자하라고 구슬려서요. 부자들은 마지막 한탕을 결심합니다. 30년 동안 벌여온 파티가 끝나기 전에 금은보화를 최대한 많이 챙겨놔야 했죠. 하지만 뭔가 시선을 돌려줄 게 필요했습니다. 9.11테러에서 이들은 깨달았죠. 이 애국자들의 땅에서 가장 잘 먹히는 건 고전적인 수법, 공포라는 걸요. 그리고 남들을 가장 잘 겁줄 수 있는 건 제일 겁 많은 사람이죠. 부시 대통령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 경제에 심상치 않은 시기가 왔습니다. 최고 전문가들에 의하면 국회가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미국 금융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심각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은행이 파산할지 모릅니다. 주식시장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고 여러분의 퇴직연금도 위험합니다. 집값이 곤두박질 치고, 주택 압류가 급증할 것입니다. 사업체와 농장을 소유하신 분들은 신용 얻기가 더운 힘들어 질것입니다. 더 많은 사업체가 문을 닫고, 수백만 국민이 일자릴 잃게 될 것입니다. 신용기록이 괜찮은 분들도 차를 구입하거나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 집니다. 결국 국가가 겪게 될 것은 길고 고통스러운 불황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 사실 이런 연설을 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주류 언론들이 이미 열심히 때리고 있었으니까요. 2008년 8월 15일, 미국 금융은 거의 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댐이 무너지는 걸 보신적 있나요? 처음엔 하나의 조그만 균열이죠. 점점 틈이 커집니다. 댐 내부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죠. 얼마 안 되어 댐이 버티지 못 합니다. 댐과 물의 무게가 함께 댐을 짓 누릅니다.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갑자기 균열이 생기고, 댐이 무너집니다. 물이 새기 시작해서, 댐이 무너진 겁니다. 이 모든 과정이 2분도 안 걸립니다. 그런데, 이작은 구멍은 수년 동안 거기에 있다가 지금 댐을 무너뜨린 겁니다. 이 체제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반석이 아닌 모래 위에 지어졌으며 뿌리 속부터 썩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무너지는 듯한데 거기서 부자가 된 건 누구죠?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됐죠. 주로 관료와 거대 은행 중역이요. 거기에 비우량 대충자들도요.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졌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부자가 됐죠. 특히 국회를 떠난 다음에요. 많은 전직 의원이 금융회사에 들어갔죠. Citigroup 과 골드만삭스 CEO로 지낸 로버트 루빈은 법을 개정하여 상업은행의 투자은행 겸업과 변종 보험상품 판매를 허용했습니다. Citigroup과 트래블러스 그룹 합병이 그 덕에 합법화 됐고 700억 달러짜리 계약을 통해 세계 최대의 은행이 탄생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를 떠난 뒤, Citigroup에 들어간 루빈은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죠. 그럼 서머스는 뭐로 돈을 벌었을까요? 서머스는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강연을 하러 다녔는데 어떤 경우에는 한번에 10만 달러 이상도 받았습니다. 서머스는 부업으로도 52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헤지펀드에 관한 조언으로요. 가이트너는 어디서 일했죠? 가이트너(재무부 장관)는 실패했습니다. 그가 일평생 건드린 거의 모든 일에서요. 그가 직접 관리했던 기관 대부분이 경제를 말아먹었죠.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재무부 장관이 됐죠?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일 때 일을 완전히 잡쳐서요. 앞뒤가 안 맞아요. 완벽히 이해가 됩니다. 미국 정계에선 새로운 게 아닙니다. 비록 틀렸지만 당신이 원하는 답을 주는 사람의 가치는 이로 말할 수 없죠. 그런 사람들이 보통 높은 자리에 오릅니다. 그들이 하는 얼빠진 말과 행동 덕분에요. 이 사람들은 금융 탈규제로 우릴 부자가 되게 해준다고 약속하고선 정작 자기들이 부자가 되죠.
부자가 더 가지려 한다는 거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그런데 이들이 더 새롭고 뻔뻔한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재무부에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서 우리 세금 7천억 달러를 들고 나오는 거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요. 국회 지도부와 부시 행정부는 긴급히 Wall Street 거물들과 사적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투자를 잘못해서 생긴 구멍을 메우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알아보려고요. 거래를 주도한 건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으로 전 골드만삭스 CEO인데 거기서 나와 재무부 장관 자리에 오를 당시에 순자산이 7억 달러로 추정됐죠.
재무부는 Wall Street의 하수인이나 마찬가집니다. 골드만삭스 출신이 요직을 전부 차지했죠. 골드만 정부라고 부릅니다. 한때 골드만 간부였던 수많은 인물이 부시 행정부 당시 재무부에 있었습니다. 클린턴 집권기에 그랬듯이요. 그들은 내부에서 로비스트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금융규제를 없애는 일이었죠. 국민이 주는 돈을 받으면서요. 폴슨 장관은 그냥 뽑혀온 게 아닙니다. 그는 골드만에 있을 때 변종 주택 파생상품으로 일을 했죠. 그 때문에 골드만삭스가 곤격에 빠진겁니다. 광기에 싸인 주택 파생상품이 골드만의 경쟁자들마저 대거 무너뜨렸습니다. 그러자 골드만 출신들이 정부에서 고삐를 잡고 포화가 멎은 뒤에 골드만삭스를 WallStreet 의 왕위에 앉히려 한 겁니다. 그래서 재무부에 절대 들여서 안 될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골드만 출신들입니다. 결국 그들이 내놓은 해답이 뭐냐고요? 납세자들의 돈으로 골드만을 구하는 거였죠. 다른 복 받은 금융기관들 하고요.
‘폴슨 재무부 장관이 짧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꽤나 간단합니다. 폴슨 장관이 국고 열쇠를 쥐고 미국 국민의 이름으로 7천억 달러를 빌려주는데 모든 법이 무시됩니다. 모든 법이요!’ 법안을 우리 눈앞까지 들이밀고 냅다 찬성표를 던지라고 했죠. 생각할 시작도 안 주고요. 청문회도 없었죠. 두 달 뒤에 선거가 있었는데 선서까지 8주 남은 상황이었죠. 실수하기 싫었죠. 그들은 공포를 이용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죠. 그들은 여기에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을 이용해서 강한 압력을 만들어 냈어요.
투표 전 날밤 전례 없는 수의 국민이 수백만 개의 메시지를 국회에 보내서 법안 부결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하원에서의 투표 결과로 부결됐습니다. 이런 강한 반향은 국회와 Wall Street가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거였습니다. 바로 CitiBank 비밀 문서가 경고했던 거죠. 대중이 권리를 행사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부자들의 약탈도 끝날 것이다라는 것을.
폴슨과 기업 총수들은 다시 국회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민주당과 밀실회담에 들어갔죠.
며칠 만에, 국회는 태도를 돌변하여 은행들이 그들이 원했던 7천억 달러이상을 줬습니다. 국민은 경악했죠. 263표 찬성, 171표 반대,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모두 철저하게 계획된 거였죠. 발생한 시점부터 관여된 인물까지요. 지령을 전달할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원할 때 마침 국회가 열렸죠. 우연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이건 고도의 기술로 수행된 첩보작전과 같아요. 작전은 끝내주게 성공했죠. 금융 쿠데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엘리자베스 워런, 의회 구제금융 감독위원회 의장에게 물었다. “우리 돈이 어디 있죠?” “저도 몰라요.” “모르신다고요? 의원님께서 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재무부 정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마라’ 였어요.” “말이 않되 요. 어째서 재무부가 은행들에게 돈의 사용처조차 따지지 않은 거죠?” “폴슨 장관에게 물어보세요. 저도 물어봤거든요. 의회 구제금융 감독위원회 의장으로서요. 전 아직 답을 못 받았는데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리란 걸 암시하는 단서가 있었는데, 바로.. 일반적인 미국사람들이 실제로 부자에게 분노한다는 겁니다. 흥청망청 놀다가 해만 입히고 말았죠. 그 일은 바로 국민들이 부자에게 등을 돌린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 국가를 근본부터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그것이 곧 미국이 겪게 될 일입니다.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오바바 대통령이 선언했다. Wall Street가 원했던 게 아니라서 몹시 걱정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하던 대로 했습니다. 있는 대로 돈을 뿌렸죠. 골드만삭스는 그의 최대 후원자가 됐습니다. 거의 1백만 달러를 기부했죠.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불안해 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바 당선을 사회주의자라고 억압하기 시작했지만 그 공포 전략도 소용없어진 겁니다.
몇 달 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젊은 성인 층의 겨우 37%만이 사회주의보다 자본조의를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2008년 11월 4일, 오바바가 당선이 되고, 사람들은 그날 미치도록 울고 기뻐했다는 겁니다. 전국이 그의 승리로 열광에 빠졌죠. 사람들은 그때까지 엄두도 못 했던 일들을 실행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집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왠지 아세요? 그 회사들이 저당권이 있다고 우겨도, 여러분 변호사가 지장을 찍지 않았다면 담보 잡힌게 아닙니다! Wall Street에선 그런 서류를 들이밀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미국 국민 여러분, 집을 점거하십시오! 절대 나오지 마세요!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곳이면 어디든지요! 그리고 이 국회라도 못 건드립니다! ” 이렇게 미국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시카고에선, 리퍼블릭윈도앤도어 사 노동자들이 기발한 수를 냈습니다. 그들은 곰곰이 생각해보고 미리 통고도 없이 해고 당한 것, 유급휴가와 퇴직금을 받지 못한 것, 의료혜택을 빼앗긴 것이 잘못됐음을 깨달았죠.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건물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임금과 받아야 할 돈을 받기 전까진 요. 결국 은행과 회사 축은 노동자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1936년 새해 전야였습니다. 플린트의 수백만 남녀가 GM 공장을 접수하고 44일 동안 점거했습니다. 그들은 산업을 상대로 승리한 최초의 노동조합이었고 그 행동의 결과로 중산층이 형성됐습니다. 그 시대 때는, 경찰과 구사대가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밤, 유혈 사태가 발생하자, 미시건 주지사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지원하에 주방위군을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들의 총구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경찰과 용역 깡패를 향했습니다. 노동자들을 건드리지 말하는 경고였죠. 로즈벨트는 이 노동자들에게 불만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7년 뒤, 루즈벨트 대통령이 병환이 깊어 국회에서 새해 연두교서연설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디오를 통해 방송됐죠. 그것이 끝나고, 그는 집무실에 카메라를 들였는데. 왜냐하면 미국 국민들이 이 부분만은 직접 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한걸음 크게 나아가 헌법 제2 권리장전을 발의 합니다. “우리 시대에, 특정한 경제적 진실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제2 권리 장전 아래, 모두를 위한 새로운 안전과 번영의 토대가 신분과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마련 될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는바, 알맞은 보수의 일자리를 가질 권리, 적절한 음식과 의복과 유흥을 향유할 권리, 모든 농민이 작물을 기르고 팔아 그와 가족이 걸맞은 생활을 영위할 권리, 모든 기업인이 사업을 함에서 불공정 경쟁과 국내외 독점체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모든 가정이 걸맞은 주거를 누릴 권리, 적절한 의료보호와 좋은 건강을 누릴 권리, 노령, 질병, 사고 실업 등의 경제적 공포로부터 적절히 보호받을 권리, 좋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권리. 이 모든 권리들이 말하는 건 사회보장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우린 이들 권리의 이행을 통하여 인류 행복의 새로운 목표에 정진해야 합니다. 자국에서 사회보장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세계평화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루즈벨트는 일년쯤 뒤에 사망했습니다. 살아서 전쟁의 끝을 보지 못했죠. 그의 새로운 권리 장전도 제정되지 못했고요.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성공했더라면, 모든 미국인은 인종에 관계없이 걸맞은 일자리, 생계를 유지할 임금, 일반 건강보호, 좋은 교육, 알맞은 가격의 집, 유급 휴가, 적정한 연금의 권리를 누렸을 것입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미국인도 이를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 사람들은 이런 권리를 모두 갖고 있죠. 어떻게 그렇게 됐냐고요? 전쟁이 끝나고, 루즈벨트 행정부에 있던 사람들은 유럽의 재건을 도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헌법이 새로 쓰여졌습니다. 패전국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요. 이탈리아 헌법은 모든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했습니다. 1947년의 일이죠. 독일 헌법은 국가에게 공익을 위해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이전할 권리를 줬습니다. 일본엔, 모든 노동자는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가진다. 학문의 자유는 보장된다. 그 후 65년 동안, 미국은 루즈벨트가 희망한 국가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미국은 이렇게 됐죠.
왜 고통을 겪는 건 항상 가난한 자들인가? 왜 지붕에서 도움을 청하는 건 메이도프나 시티뱅크 회장 골드만삭스 해지펀드 매니저, AIG의 CEO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안 그런가요? 항상 당하는 건, 제 몫을 못 받은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이 몽땅 가져가서 이들에겐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고 죽게 놔두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걸맞은 직업, 건강보호, 좋은 교육, 자신만의 집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루즈벨트의 꿈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꿈이 없다면 그것은 범죄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 꿈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수를 희생하여 소수를 부자로 만드는 체제가 있는 한에는요. 자본주의는 악입니다. 악은 통제 할 수 없습니다. 아예 근절하고 모두를 위해 좋은 것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 입니다. 제발, 서두르세요!
(비행기가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 때문에 예정보다 4시간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200여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며 승무원과 기장을 향해 짜증을 냈다. '당신들 때문에 스케줄이 엉망이 됐다'는 식이었다. 며칠 뒤 이날 승객 중 단 한 명만 항공사로부터 600달러짜리 무료 항공권을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비결은 말 한마디였다. 항공권을 받은 승객은 승무원을 오히려 위로했다. "날씨도 안 좋은데 연장근무를 해서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이 한마디가 승무원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승객은 공짜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중점은 모든 생각, 마음가짐은 reaction(반응) 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예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200여 승객들은 4시간 연기된 것에 react (반응)했는데, 그들의 reaction(반응) 은 '당신들 때문에 스케줄이 엉망이 됐다' 이다. 다만 한 사람은 200여 승객과 달리 reaction이 달랐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요즘 말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는 말들이 있는데, 내가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말과 비슷하다.
보통 예와 똑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면, 보통 '당신들 때문에 스케줄이 엉망이 됐다' 식으로 반응이 보일 것이다.
그리곤 나중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도와준 사람, 물건, 신, 등에게 고마워 하며 산다.
몇몇은 고맙게 여길 줄 알지만, 거기서 머문다.
또 몇몇은 고마움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나서게 되는데, 그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선교자, 자원 봉사자, 등이라고 부른다.
(하나에 집중되어 불려지게 되면, 직업이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하지만 사람, 인간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리사, 독서가, 프로게이머, 등.)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말은, 고마워 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큰 것과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조그만 도움에도 감격 할 줄 알며 변변치 못한 값싼 선물에도 고마워한다.
비록 쓸모 없는 선물이라도 못 받는 것 보다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알며 서로 나눌 수 있는 정에 고마워하고 남을 생각해주고 좋아해주는 노력에 더없이 고마워 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며 대단한 것 보다는 작은 정성에 고마워 할 줄 알며 명품보다는 나눌 수 있는 정에 감사할 줄 알며 아주 잘해주는 것보다 가끔 한번씩이라도 챙겨주는데 고마워 하고 감사할 줄 안다.
비록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도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할 줄 알며 그 사람의 장점을 볼 때면 더없이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늘 아래같이 흘러갈 수 있는 시간에 고마워 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좋은 음식이 아니더라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고마워하며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도 인연의 만남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많은 시간 못하더라도 가끔 한번씩 만남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고마워 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부와 권력을 탐하지 않고 높음과 낮음을 비교 하지 않으며 오늘을 만족하게 보내며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모래 한 알 한 알이 보여 온 사막을 이루고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작은 것 에서부터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자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항상 북두 칠성처럼 한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언제나 변함없이 맑은 빛이 빛나는 사람이야 말로 고마워 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고마워 할 줄 아는 너에게로부터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같은 곳에 있다는 것에 정말로 고맙다.
고마움에 머물지 말고, 고마움에 넘는 좋은 행동, 좋은 생각, 좋은 관점을 을 항상 가지고 살자.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hat to secure these rights, Governments are instituted among Men, deriving their just powers from the consent of the governed; that whenever any Form of Government becomes destructive of these ends, it is the Rights of the People to alter or to abolish it, and to institute new Government, laying its foundation on such principles and organizing its powers in such forms, as to them shall seem most likely to effect their Safty and Happiness.
- Thomas Jefferson, 1801-1809 -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들은 그들의 창조자에 의하여 어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것들 가운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진리가 자명한 것으로 우리는 견지한다.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동의로 부터 나오는 권력을 가지는, 정부가 사람들 중에 수립되고, 어떤 형태의 정부가 이들 목적을 파괴한다면, 그것을 변경하거나 파괴하고, 그러한 원리에 기초하고,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이룰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라는 진리를 견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