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고, 건축물은 자연 위에 세워진 인공적인 것으로 

집, 빌딩, 다리 등과 같은 것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연은 무수한 분자적인 힘들의 흐름에 의해 자연적으로 각 개체들이 조화롭게

운동하지만 건축이란 자연적인 흐름이 아닌 인공적인, 계획에 의하여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건축가는 건축과 관련하여 계획을 세우고 감독 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건축은 자연을 일정 부분,

작거나 큰 부분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인간을 위한 건물을 짓는 것으로 인식된다


현대의 많은 건축물들이 위와 같은 말들을 한다.

특정 집단의 금전적,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는 말들을 하고,

건축가 개인의 위상을 뽐내는 말들을 한다.

이들은 주변 환경과 인간과의 조화는 고려되지 않았고,

이윤동기를 위한 목적성을 띄고 있다.

우선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배경이

될 산맥의 높낮이, 주변 건물의 일광 피해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우선 높고 튀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의 공공건물일 경우 권위적이어야 하며

위치는 물론 공간은 닫힌 형태여야 한다.

모두의 건물이지만 모두가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게끔 하는 건물들이다.

번쩍번쩍한 다양한 하이테크(high-tech)의 신소재들로 복잡하고

화려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현대의 주류 건축물들과는 달리,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물들은 말이 없다.

 

"우리는 믿습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더 빠르고, 더 얇고, 더 가볍다는 것 모두 좋지만,

기술이 한발 물러나 있을 때,

모든 것이 더 즐거워지고,

비로소 놀라워지는 것이라고,

그것이 곧 진보이고,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바로 이런 것처럼"

 

인상 깊었던 애플의 아이패드2(iPad2) 광고에 나오는 말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은 기술이 한 발 물러나 있다.

그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자연과 인간과 동시에 조화되는 인간의 자연이다.

건축물을 통해 자연스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소통 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매개물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기용의 건축에서 고려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이다.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는

자연 그리고 인간 그리고 건축물(...and ...)이지.

자연이냐 인간이냐 건축물이냐(...or....)이 아니다.

그의 건축물은 주변의 요소들과 수평적으로 접속한다.


< 기적의 도서관 in 서귀포 >

기존에 있던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건축의 일부로 활용한 예


기존의 것들을 어떻게 잘 활용할까 하는 물음에서 파괴보단

기존의 자연물들을 적극 활용하여 건축물과 조화되게 한다.

기존의 것들을 잘 활용하는 것은 자연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땅과 대기에 담긴 역사적인 이야기 등의 분자적인 힘, 기억 등을

보존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들의 소통을 고려한다.

정기용의 건축물은 그 안에서 자연스레 이웃과 말을 섞을 수 있게끔 하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불편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소수자들도 그 공간에서 만큼은 소수성을 극복할 수 있게끔 하는 요소이다.

건축물은 무언가를 파괴하고 가로막으며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더 소통을 원활하게끔 한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다소 떨어진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정기용의 동료 건축가들과 건축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의 조형미에 대해 ‘그 쪽으로는 재능이 없다’라고 까지 한다.

그의 건축은 투박하고, 오래된 것 같으며, 심지어 마감처리 등으로 인해

때로는 완성 되지 않은 느낌까지 든다.

화려함과 하이테크(high-tech)가 주류인 지금,

정기용의 건축은 ‘철저한 비주류’이다.

하지만 조화롭고, 공동체에 어우러진 사람처럼,

자연과 다른 건축물들에 스며들어 있다.

상업과 같은 특정 목적에 그의 건축은 부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서 그의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물들이 하는 말은 ‘날 좀 보소’ 하고

부르짖는 화려한 건물들이 하는 수많은 허언虛言들이 아니라

말이 없음으로 말 하는 것,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편히 쉬다 가)’,

‘...(이야기 하다가 가)’,

‘...(아무렇게나 머물다 가)’

이 아닐까 생각한다.

 

<등나무 평균 굵기를 고려하여 세운 구조물 >

등나무가 자연스레 구조물에 기대어 자라 시원한 그늘이 된다

 

그에게 건축이란 인간(인공, 인위적인 것)의 인공물이 아닌,

인간(자연)의 인공물(자연의 일부)이다.

자연과 차별되는 것이 아닌 인공적인 자연물, 만물이 조화로울 수 있는 공간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해당 건축물의 본질적 목적에 충실하다.

정기용 건축가의 공공기관인 무주 주민자치센터에는 목욕탕이 있다.

주민들이 목욕을 잘 못 하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

나아가 주민들이 만나는 소통의 장소이다.

공공건물의 공共적인 의미에 맞게 수직적이고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가 아니라,

진정한 주인인 주민들이 들어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건축한 기적의 도서관

책을 쉽게 접할 수 없는 곳의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역의 풍경과 어우러지게 친근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오고 싶게끔 만들고.

내부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야기하고 놀면서 책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공간이다.

 

< 정읍 기적의 도서관 >

비닐하우스 모양으로 주변환경과 잘 어우러지며

지역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 정읍 기적의 도서관 (내부) >

자연친화적이고 밝은 분위기.

서로 이야기 하며 놀면서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어떻게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건축가 정기용에게 건축이란 예술보다 더 예술인 것,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예술이다.

그가 건축가로서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사람들을

더 가깝고 행복하게 해주는 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아가 서로 이웃도 모르고 사는 삭막한 인간 사회,

도시적인 가치의 부작용에 대항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희망의 씨앗들을 뿌리는 것이다.

2시간 안 되는 평균 분량의 다큐멘터리 이지만

죽음 직전의 노인(정기용)의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인지

2시간 내내 조용하고 잔잔하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던지는 메시지들을 음미하면서 시청한다면

본인의 목표, 꿈,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 등을 떠나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Base on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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