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러 매체를 통해서 상담을 합니다.
지난 5년간 주로 20, 30대에게 메일로 고민 상담을 받았습니다.
하루 평균 20여 통, 지금까지 수만 통을 받았는데 결국 그 중 7할은 똑같은 얘기에요. 
지금 나는 이러이러한 상태인데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앞으로 뭘 할까요?
70퍼센트는 이런 메일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 앞가림도 바쁜데 그 사람들이 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될지는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는 이유는 내가 알아요. 


 왜 모르느냐.


락강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약간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유명한 사람들은 쉬운 말을 어렵게 합니다. ^^
 
무슨 소리냐 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엄마 만나겠죠, 보통.
그리고 그 엄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아이가 웃었는데 엄마가 좋아해. 그럼 자꾸 웃어.
걸었는데 엄마가 박수를 쳐. 아이가 자꾸 걸으려고 해요.
말을 했는데 가족들이 박수쳐주면 자꾸 말을 하려고 하죠.
누구나 겪는 발달과정이에요.
 
나이가 먹으면 그 대상이 엄마, 선생님, 친구들, 친인척, 사회가 되기도 하죠.
학교 들어가서 공부 잘하면 선생님들이 칭찬합니다.
그럼 자꾸 공부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이야기는 애초에는 아이가 태어나서 사회를 배워가는 과정이란 겁니다.
가장 먼저 하는 게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고 그렇게 사회를 배워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구분이 되기 시작해야 되는데 이대로 계속 성장하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이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엄마가 원해서 하는 건지, 선생님이 칭찬해 주니까 하는 건지 친구들이 너는 이 정도는 해줄 거라고 기대하니까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해요.
 
이렇게 구분이 안가는 그 상태에서 성인이 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서른, 마흔이 되고 어느 순간 문득 깨닫습니다.
이때까지 했던 게 사실은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죠.
어떡해요 근데, 인생 돌아가서 다시 살수도 없잖아요.
 
자기 욕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는 거고, 언제 행복한지 모르는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알아.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만 궁금 한거지. 불안하니까. 그게 첫 번째 이유에요.
 
20대, 30대 여성의 메일의 절반 이상은 또 이런 메일입니다.
어떤 남자가 있다. 오래 사귀었다. 미래가 불안하다.
근데.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이 남자가 말은 잘 안통할지 몰라도
조건이 좋다. 누구랑 결혼해야 하나.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여성들이 보내는 고민 메일의 절반입니다.
수만 명이 보낸 메일 중, 바뀌는 거라고는 그 남자들의 직업 밖에 없어.
그러니까 사랑인가요, 조건인가요? 이런 얘기죠.
 
사실 이 질문도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왜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아까랑 똑같은 이윤데, 어떤 사람은 모피를 입고 명품가방을 들고 넓은 아파트에서 외제차 타면 조금 사랑이 부족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반대로 재벌가에 시집을 가도 사랑이 부족하면 이혼해야 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사랑이냐 조건이냐가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거죠.
 
그럼, 이 질문은 사실은 이런 거죠.
“저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대신 말해주세요.”라고 저한테 묻는 거 에요.
 
내가 스스로 욕망의 주인이 되서 주체가 돼서 다른 모든 사람의 욕망을 제쳐두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나하고 일대일로 만나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겁니다.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서 다른 사람한테 계속 묻는 거 에요.
내가 언제 행복한지 말해주세요. 바보같은 소리에요.
남들이 내가 언제 행복한 지 어떻게 알아.
 
청춘한테 필요한 첫 번째는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는 거 에요.
 
두 번째. 그러며 자기가 정말 욕망을 알았다고 칩시다.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건투를 빈다’라는 책 보면 자세히 나와 있어. 내가 쓴 책.
핵심만 얘기하죠. 자기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돼야 한다.
일대일로 자기하고 마주서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았다고 칩시다. 어렵게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았어요.
 
그 다음 해야 될게 뭐냐. 그 일을 그냥 하는 겁니다.
바보 같은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제일먼저 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다른 사람들한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는 겁니다.
 
그 일이 실패했을 때 자기가 못난 사람이 안되려고 말입니다.
원래 워낙에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실패했어도 내가 못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주변사람들한테 퍼트리는 걸 제일먼저 합니다. 열심히.
 
그런데 그러다 자기가 설득이 되요.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그래서 주변에서 왜 아직 안하고 있냐 물어보면 화를 냅니다. 너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자기가 자기한테 설득이 됩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마침내 안하게 되죠. 그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안 해도 되는 일, 어차피 못하는 일, 다들 실패하는 일이 돼서 그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냥 끝나 버립니다.
 
어떤 일을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 에요.
 
예를 들어보죠. 제가 십대 때 아라파트를 만나고 싶었어요.
아라파트가 누군지 아십니까?
요즘으로 치면 빈라덴 정도 되겠네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피엘로의 의장.
뮌헨 테러라던가 각종 세계적인 테러를 주도했던 칠십년대 날렸던 테러리스트 두목이죠.
 
아라파트를 제가 십대 때 외신란에서 보고 그 사람이 만나고 싶었어요.
이유는 나도 몰라요. 그러지 말라는 법 없잖아.
아무도 나한테 그래선 안 된다는 말도 안했어.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딘지 알아야지
이스라엘에 첩보기관도 못 찾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찾아요.
 
 
 
근데 이십대 중반이 되던 해에 94년도에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인 아라파트
그리고 미대통령이 중동 평화회담을 했습니다.
뭘 약속했냐면 팔레스타인이 독립국이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협정을 맺고, 그걸로 노벨평화상 받았습니다.
 
외신면에서 그 소식을 봤고 그 결과 아라파트가 전 세계 떠돌다가 이스라엘로 돌아간 거 에요.
94년에 드디어 아라파트 어딘지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아라파트 만나러 간다니까 내 친구들이 다 미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라파트가 오지 말란 말 하지 않았다.
궁금하니까 보러 가야겠다고 말했죠.
그래서 보러갔어요.
이스라엘로 가서 검은선 몇 개 넘고 어렵게 어렵게 팔레스타인 지역 가서 아라파트 만나야 겠다 했더니, 네가 왜 만나야 되냐 그러기에, 내가 리스펙트 한다 그렇게 말했죠.
결국 그 사람들이 저를 차에 태워서 아라파트 집 앞에 내려 줬어요.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한 겁니다. 하고 싶으니까 그냥 간 거 에요.
만나고 싶으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어딜 가고 싶다, 뭘 하고 싶다 해서
그걸 시도해보지 않은 적 없어요.
그렇다고 다 된 적은 없죠.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그래도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일을 그냥 하는 겁니다. 어려운 가 얼마나 실패했을 때 타격이 얼마나 큰 가 따지지 않고 그냥 하는 겁니다.
 
그게 성공을 보장하진 않아요. 하지만 후회를 없애줘요.
삶에 하고 싶은 일도 찾았고 그냥 하면 된단 거도 깨달았어요.
언제 해야 되느냐 당장. 지금. 당장.
 
제가 배낭여행 간 적이 있어요.
그지였거든요 그때. 배낭을 메고 원래는 하얀색 이었으나 더 이상 무슨 색인지 알 수 없게 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죠.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이랑 오페라 하우스 사이에 오페라 대로라고 큰 길이 하나 있어요.
그 대로 걷다가 양복점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이전까지 양복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 양복점에 걸린 양복을 보고 그 가게 들어갔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내 것인 양 그 양복을 꺼내서 입었습니다.
그리고 양복만 입으니까 안 어울려서 와이셔츠도 하나 꺼내 입고 넥타이도 하나 꺼내 입고. 이 모든 일을 한 30초 만에, 마치 내 옷을 맡겨 놨다 찾는 거처럼 했어요.
다 입고 보니 너무 멋진 겁니다. 얘가.
그래서 난생 처음 양복을 사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12만원 정도였어요. 그때 제가 두 달 더 있어야 했는데 120몇 만원 남았었어요.
살 수 있겠다 싶어서 사려고 벗으면서 다시 보니까 0이 하나 더 있는 거 에요. 120만원 정도였던거죠.
 
그때까지 내가 태어나서 샀던 모든 옷을 합친 거보다 더 비쌌지만 그 옷을 벗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평상시라면 벗고 나왔겠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니까.
 
그런데 거울 속에 있던 아이가 너무 멋있어서
저 아이를 두고 나갈 수가 없는 거 에요. 그와 함께 나가야겠다.
그래서 주저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전 재산 인데, 사고 나면 한 푼도 없는데, 아사할 수도 있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이 남은 120만원을 남은 두 달 동안 하루 2만원씩 대단히 합리적으로 계획적으로 쪼개서 잘 소비하면 그럼 그날 하루 굶지는 않고 다음날 굶지 않겠다,
그 다음날도 예측 가능한 잠자리가 있다.
그러면 그날 하루하루 쌓이는 행복이 있죠.
그 행복을 60일치 다 더하면 이 양복 샀을 때 행복보다 큰가?
생각해보니까 아닌 거 같애요.
 
그래서 두 번째. 만약 내가 지금 돈 없어서 이 옷을 못 사.
나중에 30대에 돌아와서 그 때 돈이 좀 있을테니까 양복을 사면, 그럼 내가 스물다섯에 놓친 이 행복은 그때 가서 돌아 올 건가?
서른다섯의 행복은 서른다섯의 행복인거죠.
스물다섯의 행복은 그때 사라진 겁니다.
 
세 번째. 두 달은 아직 안 왔잖아요. 그렇죠. 아직 안 왔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그 양복을 샀어요.
120만원을 주고 그 양복을 사서 그걸 입고 파리에 룩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그 양복은 보스였어요. 당시만 해도 이름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두목. 뭐야 촌스럽게.
그러나 제 생각에 룩상부르 공원에서 노숙한 사람이 입었던 양복으로는 최고가가 아니었을까.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낫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직전까진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어떡하나 이제. 아침에. 돈은 5만원 남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행 다니다가 숙소 삐끼를 하면 되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거 아르바이트를 하자. 로마를 갔습니다. 당장.
 
펜션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돈 내고 나오면서 내가 지금 갈수도 있고, 역으로 가서 손님 세 명 끌고 오면 그 방에 나도 재워줘라 공짜로.
만약에 다섯 명 이상 데리고 오면 한 사람 추가분부터 나를 얼마를 줘라. 그리고 아무도 못 데리고 오면 나는 그냥 가겠다. 주인 입장에선 와이낫이잖아요?
역으로 가서 제 생각엔 최소 세 명은 데리고 오겠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날 한 시간 만에 30명 데리고 왔어요.
왜. 난 보스를 입었잖아.
거기서 일주일 있으면서 관계가 역전 됐어요.
호텔 매니저가 제발 떠나지 말라고 했죠.
 
그 당시 전 수중에 50만원 생겼습니다.
이 50만원이 생기자 내가 왜 남의 장사를 해주고 있나 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뭐였냐면 91년이었는데 동부권 개방 직후였어요.
당시에는 숙소가 부족했습니다. 헝가리 체코 이런 나라들이.
그래서 체코로 갔어요.
 
체코에는 주인들이 살다가 집을 시즌에 통채로 내놓는 게 있었어요.
호텔이나 민박이 부족하니까.
그런 집 하나를 골라서 그날 하루 묵고, 일주일 동안 쓰겠다고 말하며 50만원을 줬어요.
그리고 2주째도 내가 50만원 당신한테 줄 수 있으면 한 달 계약을 하자고 했죠.
하루하루 다른 사람과 계약하는 것보다 한 번에 한사람한테 주는 게 편하니까,
저는 그렇게 그 집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이번에는 동양인만 상대하지 말고 서양인도 잡아보자.
그리고 역으로 가서 반반한 남자 놈 하나 잡았어.
내가 한 달 동안 널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줄 테니 내 밑에서 일해라. 안할 이유가 없잖아.
난 보스를 입었는데.
 
그래서 그 영국 친구를 고용하고 둘이 알바를 시작했죠.
대박이 났습니다. 일단 다른 데 보다 가격이 쌌고 젊었으니까요.
한 달 정도 삐끼 사장을 했는데 매일 잘 먹고 잘 쓰고 그러고도 제가 체코를 떠나는 날 수중에 천만원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모든 건 보스를 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에요.
 
제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삶의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당장 행복해져야 된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해요.
지금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도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고 열심히 뭔가를 모으거나 준비하거나 미뤄두거나 해서 나중에 행복해 질 거야.
 
행복이란 게 마치 적금을 들 수 있고
나중에 인출해 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때의 행복은 그 순간에 영원히 사라지는 거 에요.
그 날로 돌아가서 그때 행복을 찾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당장 행복해 지셔야 하는 거죠.
 
정리하면
자기가 언제행복한지 내 욕망이 뭔지 생각하고 대면해야 되요.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되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하고 싶은 지 찾았으면
그 일을 그냥해요.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실패도 하고 작은 성공도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 당장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행복이란 게 저축하거나 적금 들었다가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왜 지금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걸 유보해 두냐고. 미쳤어?
그러면 그게 잘 사는 겁니다.
 
잘 사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 인거죠.
훌륭한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 아니고.
 
제가 할 얘기는 여기까지 끝인데
그렇게 살면 그럼 어떻게 되는거냐.
이런 얘기는 해드릴게요.
 
어떤 기관에서 전 세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하는
40대의 사람들을 조사 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한 가지 있었어요.
 
한 가지 일을 20대부터 시작해서 40대까지 꾸준히 해서
40대에 성공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 전혀 상관도 없는 일들을 많이 했답니다. 무작위로.
 
그 사람들은 그 순간에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주저 없이 뛰어든 겁니다.
그러다가 아니면 다른 거 하고, 또 아니면 다른 거 하고.
미루지 않았던 거 에요.
 
그러다 30대 중반, 어느 시점쯤에서 자기가 잘하던 일을 깨달은 거죠.
그로부터 10년간 그 일을 했더니, 결과적으로 유명해져 있더라는 겁니다.
 
정해진 보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비정규직이에요.
 
사람들은 계획들을 참 많이 해요.
계획만큼 웃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 리가 없어요.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전 무신론자지만,
가장 사람에 대해서 비웃을 게 그 부분입니다.
‘계획을 세웠어 이것들이.’
 
그렇게 될 리가 없죠.
행복한대로, 닥치는 대로 사세요.
욕망의 주인이 되십시오.
어쨌든 행복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Based on '청춘페스티벌 김어준 강연'

김정욱, "무제" ⓒ 2008, Jungwook Kim and Gallery Skape all rights reserved

"미움(odium)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사랑이라는 감정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마디로 헛소리다.

정말로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이 없거나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한 번도 제대로 미움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타인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사랑 아니면 무관심일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시랑의 반대가 무관심이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미움의 관계는 반드시 서로 헤어져야만 하는,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이 세상을 떠나야 끝날 수 있는, 한마디로 저주받은 관계다.

불행히도 함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미움이라는 감정은 상대방을 죽이거나 혹은 자살하는 것으로 우리를 내몰게 된다.

그래서 미움의 감정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항상 처절하게 생각할 것이다.

"저 사람과 무관심한 관계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관계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미움만큼 비극정인 감정이 또 있을까.

어떤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관계를 소망하도록 만들 정도로 처절한 감정이니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미움이란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감소시켜서 우리를 고사목처럼 만들어 버리는 감정이다.

그러니 자살하기 싫으면, 상대를 죽일 수밖에.

반대로 상대를 죽일 수 없다면, 내가 죽을 수밖에.

자살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이렇게 꽃도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슬픔도 없으리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행복하게 눈을 감게 될 것이다.

반대로 미운 상대를 죽인다면,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기꺼이 감내하게 되는 작은 기쁨을 조금씩 되찾게 될것이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순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미소를 띠울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미움이라는 비극적 관계를 경험하지는 않았으니까.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Ernst Ludwig Kirchner, "View into a cafe", (1935)

"질투(invidia)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친구들의 모임에 남자친구를 데려가는 여자들이 있다.

이럴 때 그녀는 시시콜콜 남자친구에게 옷차림과 이야기 방식에 대해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멋진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사랑은 이미 요단강을 건너간 거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일대일의 관계, 즉 알랭 바디우의 말처럼 '둘'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경험은 두 사람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되는 경험이다.

그런데 애인을 멋지게 포장한 다음에 친구들에게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친구들과 자신이 주연이고 남자친구는 잘해야 예쁜 조연 정도로 전락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모임에서 애인이 시키지도 않은 멘트를 던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그 멘트에 빠져든 친구가 한 명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자신의 애인에게 지나친 관심을 피력하고, 심지어 애교마저 떠는 것 같다.

예상치도 못한 질투의 감정이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질투의 감정이 클수록 그녀는 서둘러 남자친구를 데리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자리를 뜰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을 빼고 자기 친구와 자기 애인이 순간적이나마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직감했으니까.

바로 이것이다.

질투의 바닥에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질투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니까.

그렇다고 이 여자가 다시 남자친구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 힘 들 것이다.

"당신만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줘요." 그녀에게는 이것이 사랑일 테니까 말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Tsuguharu Foujita, 'Autoportrait dans l'atelier', 1926) ⓒ Foujita Tsuguharu Leonard/ADAGP, Paris-SACK, Seoul, 2014

"공손함(humanitas)이나 온건함(modestia)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은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려는 욕망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세상에는 3 종류의 인간이 있다.

첫째 부류는 모든 살마에게서 온화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다.

두 번째 부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악당이라고 지탄받는 사람이다.

세 번째 부류는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욕을 먹는 두 번째 부류의 인간은 그냥 쓰레기이니까 조심하면 된다.

반면 진짜로 위험한 것은 첫 번째 부류의 인간들이다.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기보다 항상 타인의 욕망을 따르려고 하니 온화하다느니 공손하다느니 하는 칭찬을 받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폐인이 될 것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제거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죽은 자일 수밖에 없다.

반면 타인의 욕망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첫 번째 부류의 인간은 정말로 위험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억압된 욕망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폭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정에서 약한 아내나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역자를 공격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첫 번째 부류의 남자를 만날때 여자들은 그의 공손함과 온화함에 속아서 결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은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지 온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공손하고 온화한 사람을 조심하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을 조심하라!

법 없이 살 사람을 조심하라!

이건 생활의 철칙이다.

결국 우리가 가까이 해도 되는 유일한 인간들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은 타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니, 적과 동지가 명확히 구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것이다.

만일 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과 부합된다면, 이런 사람과는 주저하지 말고 사람에 빠져도 된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Rene Magritte, "The Tomb of the Wrestlers", (1960) Private Collection ⓒ Charly Herscovici / ADAGP, Paris 2011

"대담함(audacia)이란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대담한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용기라는 것이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정말 용기가 있어."

이런 표현 때문에 누군가의 내면에 용기라는 것이 마치 실체처럼 있다는 착각이 벌어진다.

번지점프대에 올라갔다고 하자. 쉽게 점프대 난간에서 한 걸음 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이런 번지점프대와 같은 위기 상황, 그러니까 그 점프대 제일 끝에 서 있을때, 결단의 순간이 찾아온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창공에 몸을 던질 수도 있고, 뒤로 한 걸음 빼서 안전함을 도모할 수 있다.

대담하게 몸을 창공에 던지는 경우 우리는 '용기'나 '대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그러지 못하고 뒤로 물러날 때 '비겁'이나 우유부단함'을 가진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용기가 있어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뛰어 내리는 것 자체가 용기일 뿐이고, 비겁해서 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물러난 것 자체가 바로 비겁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서 그는 번지점프를 하는 것처럼 몸을 던졌다면, 지금까지 그는 용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위기 상황,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과감하지 못하다면, 과거의 용기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용기와 비겁은 불변하는 성격과도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비겁하거나 원래 대담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직 위기를 감내하려고 할 때에만 용기와 대담함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가 번지점프대에 서는 것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아으로 발을 내딛을지, 뒤로 물러날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발을 내딛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뿐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말은 우리 가슴을 아리게 한다. "우리는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휴머니즘과 폭력(Humanisme et Terreur)>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 유한자인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파괴해야만 한다. 돌아보라. 생명을 유지하게 위해 우리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사실 나 한 사람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수천 마리의 닭과 수천 마리의 물고기 등은 아직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일까? 나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가족들,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타인들을 떠올려보자.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불교에서도 우리의 삶이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에 내던져져 있다고 말한다. 삶 자체가 타자에 대한 폭력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의 바다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타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심지어 죽이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번뇌와 고통의 기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옷깃을 여미고 메를로 퐁티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폭력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소한의 폭력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감수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른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도 나와 마찬가지로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Vulnerability)', 즉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지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감성의 차원에서도 알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대략 1,000여 년 전 명도(明道)라는 호로 더 유명한 정호(程顥, 1032-1085)라는 유학자가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중국 송(宋)나라 시절 유학자들의 공통된 화두이기도 했다. 정호의 선배 유학자인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창 앞의 잡초를 뽑지 않았다고 한다. 지저분하게 우거져 있는 잡초를 보면서 누군가가 왜 잡초를 제거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 뜻과 같기 때문이다(與自家意思一般)"라고 말했다. 정호의 가슴에는 주돈이의 대답이 평생의 화두로 남게 된다. 주돈이의 속내에 조금씩 조금씩 접근하다가 마침내 정호는 한 가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의학 서적에서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면 '불인(不仁)하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인()이란 명칭의 형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인자(者)는 천지만물을 한 몸이라고 여기므로, 어떤 것도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이라고 여기니 어디인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일 자신에게 있지 않다면, 자연히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마치 수족이 마비되어 기(氣)가 통하지 못하면 모두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정집(二程集)>

<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동양의학 서적을 넘기다 정호는 인(仁)이란 개념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책에서 신체가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상태가 '불인(不仁)'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맞는 말이다. 사실 누군가 마비된 자신의 다리를 꼬집는다고 해도 우리는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마비되어 더 이상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다리는 과연 나의 다리라고 할 수 있을까? 정호는 겉으로는 나의 몸에 붙어 있지만 마비된 다리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고통에 빠진 타인을 보았을 때 그와 비슷하게 고통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날개를 다친 새, 굶주인 고양이, 심지어 시들어가는 소나무를 보고서 고통을 느낀다면, 새, 고양이, 소나무는 바로 나의 것이다.

정호에게는 인이란 개념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통의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맹자가 강조했던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의미이기도 하다. 맹자는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이간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측은 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仁)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몸에서 느끼는 고통만 느끼는 사람도 있고, 가족 성원의 고통만 느끼는 사람도 있으며, 민족의 고통만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든 다른 종의 생명이든 모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이 사람이 성인(聖人)이다.

그래서 성인에게 있어 자신과 모든 타자는 하나의 몸으로 묶일 수 있다. 고통을 느끼는 범위만큼이나 나의 것이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정호가 '일체만물(一切萬物)'라고 묘사했던 경지이다. 이것은 '모든 만물을 하나의 몸으로 본다'는 뜻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다리는 죽은 다리일 수 밖에 없다. 나아가 타인이 고통스러울 때도 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타인은 죽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결론이 도출된다. 그것은 삶이란 고통이자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통찰이다. 결코 희망판 메시지는 아니다. 삶이 고통이라니 말이다. 마침내 정호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야말로 공자나 맹자가 가르치려고 했던 비밀이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가 제자들로 하여금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 주려고 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맥박을 짚어보면 인(仁)을 가장 잘 체득할 수 있다. 병아리를 보라!

<이정집>

정호의 가르침은 구체적이지만 매우 상징적이다. 우선 맥박을 잡아보라고 시킨다. 만약 다리의 맥을 짚었을 때 다리의 맥박이 느껴진다면, 혹은 손의 맥을 짚어서 손의 맥박이 느껴진다면, 다리와 손은 나의 것이다. 반면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더 이상 나의 것일 수 없다. 이어서 정호는 제자들에게 공감의 논리를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외부 생명체로까지 확장하라고 권고한다. 조용한 봄날 정원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여린 병아리를 보라! 병아리는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 다시 말해 고통받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약한 존재다.그래서 병아리는 취약한 삶, 돌보아야 할 삶, 고통을 함께해야 할 타자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共感)의 정신! 정호는 마침내 주돈이가 왜 정원의 잡초들을 제거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된것이다. 잡초의 뜻이 "내 뜻과 같다"는 주돈이의 말은 그가 잔혹하게 뽑힌 잡초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돈이는 잡초도 한 몸으로 느끼는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셈이다. 잡초를 한 몸으로 느끼는 순간, 혹은 병아리를 한 몸으로 느끼는 순간, 주돈이와 정호는 자신도 하나의 잡초이고 병아리라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들도 언제든지 잡초처럼 뽑히거나 혹은 병아리처럼 쉽게 병들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몀체는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서 존재한다는 메를로 퐁티의 탄식이 묘한 공명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최소한의 폭력을 행사하려는 겸손함,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주돈이, 정호 그리고 메를로 퐁티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일지도 모른다.

Based on '철학이 필요한 시간'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를 아시는가? 나치즘을 추앙했던 독일 사람들이나 나치즘을 혐오했던 사람 모두에게 그는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는 정치, 국가, 그리고 전쟁의 논리를 아주 냉철하게 해명했다. 1927년에 출간된 <정치적인 것의 개념 (Der Begriff des Politischen)>은 슈미트의 정치철학적 통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서 그는 '정치적인 것이란 기본적으로 '적과 동지'라는 범주로 작동한다고 명확히 규정한다. 슈미트의 '적과 동지'라는 범주는 전쟁 상태에 있는 두 국가 사이에 가장 분명하게 작동한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것'의 범주는 종교와 종교 사이에, 지역과 지역 사이에,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가족과 가족 사이에, 혹은 스타에 열광하는 팬클럽과 다른 팬클럽 사이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다시말해 '그는 우리 편이야'. 혹은 '그는 우리와 달라'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인 판단'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정치철학적 냉소주의는 그가 인간은 결코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데 있다. 만약 그의 냉소주의가 옳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것이다. 무서운 일 아닌가? 세계 평화와 인류애의 꿈은 단지 꿈으로만 남을 뿐인가? 그러나 슈미트는 역설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애로 향하는 길을 가르쳐준다. '적과 동지'가 갈등과 대립의 근원이라면,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제거하면 평화와 공존은 가능한 것 아닌가? 이미 사실을 2,000여 년 전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예수(Jesus Christ, BC 4?-AD 30)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의 가르침은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무력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에게 모든 타인은 동지, 즉 친구로 변하기 때문이다. 예수보다 먼저 동양에서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폐기하는 인류애의 길을 제시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묵자(墨子, BC 470?-BC 390?)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는 전쟁으로 얼룩진 혼란과 살육의 시대였다. 이때 묵자는 핏빛 세계를 구제하는 원칙으로 사랑의 길을 역설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핍박할 것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신분이 높은 자는 비천한 자를 경시할 것이고, 약삭빠른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기만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반대하면 무엇으로 그것을 바꾸겠는가? 묵자가 말했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하는 원칙으로 그것을 바꾼다."

<겸애(兼愛). 중(中)> - 묵자墨子 -

갈등과 대립에 대한 묵자의 진단은 단호하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당연히 그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안한다. 묵자는 인류애를 외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와 그의 학파는 몸소 인류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겸애(兼愛)의 길을 실천했다. 강자와 약자가 전쟁을 치를 때, 묵가는 약자를 도와주었다. 묵가는 약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도와주는 약자가 겸애 정신을 수용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묵가가 약자의 편을 든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강자는 약자뿐만 아니라 묵가마저도 전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가는 죽음의 공포마저도 인류애의 제단에 바쳐버렸다.

헌신적이고 초인적인 묵가의 인류애는 <장자(莊子)>의 제일 마지막 <천하(天下)>편에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묵자는 만인의 사랑과 이익을 말하고 투쟁에 반대했으니 그는 서로 분노하지 않을 것을 설파한 것이다. (......) 묵자(墨子)는 자신의 도(道)를 설명한다. "옛날 우(禹)임금이 홍수를 막고자 양자강과 황하의 물줄기를 터놓아서 사방의 야만족과 구주(九州)를 소통시켰다. 그때 큰 강이 300이요, 지류는 3000이나 되었고, 작은 물 흐름은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우임금 스스로 삼태기와 보습을 가지고 천하의 물줄기를 서로 이어놓고 살라놓았다. 장딴지는 마르고 정강이에는 터럭이 없었다. 폭우에 목용하고, 강풍에 머리 빗으며, 모든 거주 지역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우 임금은 큰 성인이면서도, 천하를 위해 몸을 수고롭게 하기를 이와 같이 했도다!" 후세의 묵자(墨者)들은 대부분 천한 짐승 가죽과 베옷을 입고, 나막신과 짚신을 신고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스스로의 고생을 철칙으로 삼고서 말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임금의 도(道)를 실현할 수 없으며 묵자라 할 수 없다."

<천하(天下)> - 장자(莊子) -

우임금은 치수(治水)사업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군주였다. 군주였음에도 그는 궁정 생활의 매혹적인 쾌락에 빠지기를 거부하고, 몸소 치수 사업에 헌신한다. 반복되는 홍수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만큼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임금의 장딴지는 마르고 정강이에는 터럭이 자랄 틈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비바람이 불어도 치수 사업 현장을 떠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자신의 삶을 돌보는 만큼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묵자는 우임김의 실천을 자신의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천한 옷과 가장 거친 음식을 먹으며 휴식마저 거부했던 것이다. 자신이 고생스러울수록 그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정치'가 '사랑'을 압도하는 시대이다. 우리는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이 안전할 수 있는 자리를 잡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자리를 잘못 잡으면, 불행이 찾아오리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삶은 결코 우리에게 안정과 평화를 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본과 권력의 감언이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계와 생존만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결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게 된 것 아닐까? 대립과 갈등이 심화될 때,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려고 드는 것이 바로 자본과 권력의 생리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시대 자본과 권력이아말로 우리가 사랑과 공존의 지혜를 포기하도록 만든 주범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치'의 길이 아닌 '사랑'의 길도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만큼 우리는 비속해졌고, 갈수록 약육강식을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명 사랑의 길은 엄청난 고행을 예약하는 길이다. 이성복(李晟馥, 1952-)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것은 생리이며, 결코 인간적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사랑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에 숙달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비록 힘들지만 사랑을 통해 '적과 동지'라는 해묵은 대립과 갈등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Based on '철학이 필요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아가 그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싶어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인가?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만 고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불행히도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때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바로 이것이 고독의 실체이다. 그래서 홀로 술을 마신다든가, 아니면 자신의 방에서 외롭게 칩거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고독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손을 내밀 때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숙명이다.

자신만의 힘으로는 버려져 있다는 고독감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오직 사랑하는 타자가 손을 내밀 때에만 고독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 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말고는 전적으로 타자의 자유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사랑할때, 우가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은 나의 프로포즈를 상대방이 받아들였을 때 찾아온다. 역으로 말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삶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기만 하면 상대방도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물론 간절한 프로포즈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생긴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사랑과 관련된 우리의 통념을 가장 최초로 체계화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사랑이나 결혼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결단과 동의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 헤겔은 바로 자유연애와 핵가족으로 상징되는 근대 사회의 가족 제도를 숙고했던 사람이다. 비록 19세기의 철학자이지만, 그가 아직도 유의미한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근대적인 사랑과 결혼의 메커니즘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 결혼 그리고 출산을 대한 헤겔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부부 사이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사랑의 감정이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이 통일은 아직 아무런 객관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통해 비로소 이런 객관성을 갖게 되며 또한 바로 이들 자녀를 통해 결합의 전체를 목도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통해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자녀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마침내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사랑을 직감하는 것이다.

<법철학 강요> -헤겔-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길을 걸어갈때, 우리는 두 사람이 연인 사이인지, 아니면 결혼한 부부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보든지 간에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임신을 해서 자녀를 갖는 것이다. 누구든지 임신부를 포함한 커플이나 아이를 동반한 커플이 부부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아이가 없는 "부부 사이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서 객관성이란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다른 사람도 부부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생기면 주관적인 사랑은 함부로 파손될 수 없는 객관적인 사랑으로 진입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헤겔이 사랑하는 두사람의 주관적인 내면, 혹은 자유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아닐까?

헤겔이 말한 객관적 사랑은 바로 자녀를 낳으면서 실현되는 것이다. 헤겔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껴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그 결과 두 사람사이에는 자식이 태어난다. 헤겔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아내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남편도 자식을 사랑한다. 그런데 자식은 바로 아내와 남편 사이의 사랑이 객관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한다." 그렇지만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한다는 헤겔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사랑하지 않았어도 두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아이가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육제적 관계를 맺었던 그 순간,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했을 가능성은 크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자식을 낳은 뒤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자식은 사랑의 객관적 모습이라기보다, 이제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된 두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두는 족쇄로서 기능하게 된다.

헤겔을 읽다보면 <선녀와 나무꾼>이란 전래 동화가 떠오른다. 아이를 셋이나 가졌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나무꾼이 선녀의 자유를 박탈한 채로 결혼 생활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날개옷을 빼앗아 선녀의 자유를 박탈했고, 두 번째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다시 한 번 선녀의 자유를 박탈한다. 그렇지만 날개옷을 되찾은, 다시 말해 자유를 되찾은 선녀는 바로 나무꾼을 떠나버린다. 이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헤겔보다 더 지혜로웠다고 할 수 있다. 헤겔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결혼과 자식은 두 사람을 보장해줄 수 없다. 헤겔을 읽으면서 우리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변모하는 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는 결단의 순간이 왔다. 사랑이란 불안한 열정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이란 평안한 일상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와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가 걸었던 제3의 길도 존재한다. 결혼이나 가족 제도가 서로의 자유를 구속하여 사랑의 열정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사람은 평생 동안 계약결혼이란  삶의 형식을 관철시켰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결혼을 했든 아이를 낳았든 간에 상대방의 자유를 긍정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만큼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 고통은 나무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서 이성복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너'가 자유로운 결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까지 말이다. 이런 기다림을 유지한다면, 다시 말해 사랑하는 타자의 자유를 긍정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항상 푸르게 유지될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Based on '철학이 필요한 시간'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생일, 기념일, 입학식, 졸업식, 취업, 승진 등 많은 경우에 선물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선물을 제대로 주고받았던 것일까? 야기서 선물과 뇌물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선물이 어떤 대가도 없이 주고받는 것이라면, 뇌물은 대가를 전제하고 주고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뇌물과 선물은 정의처럼 그렇게 분명히 구별되는 것일까? 다음 사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친구가 승진했을 때, A는 고급정장을 살 수 있는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주었다고 하자.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A는 선물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기만 했다. 얼마 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A에게 일어났다. A도 친구와 마찬가지로 승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소식을 들은 친구는 전화로 축하의 뜻을 전하며 만나자고 했다.

친구는 조그만 봉투를 건네주며 식사를 사주었다. 친구와 헤어진뒤 봉투를 열어보고는 A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봉투 안에는 5만원 상당의 도서 상품권 한 장이 달랑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현 듯 A는 불쾌감이 들었고, 얼마 전 자신이 승진 선물로 건네준 상품권이 뇌리를 스쳤다. 상품권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받은 도서 상품권과 비교하는 순간, A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과거에 주었던 선물이 사실은 선물이 아니라, 일종의 뇌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A는 대가를 바랐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 사례는 A에게만 해당하는 특이한 사례일까? 선물을 받고 나면 항상 그 선물의 액면가와 유사한 대응 선물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관례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고받는 대부분의 선물이 명목상으로만 선물일 뿐, 그 이면에는 뇌물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선물이나 뇌물과 관련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논의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선물과 관련된 우리의 허위의식을 그 뿌리에서부터 파헤쳤지 때문이다 조금 복잡하지만, 선물에 대한 그의 논의를 음미해보도록 하자.

 

선물이 주어지는 조건으로서의 이런 망각은 선물을 주는 쪽에서만 근본적인 것이 나이라, 선물을 받는 쪽에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는 주체에게 선물은 되갚아지거나 혹은 기억에 남겨지거나, 아니면 희생의 기호, 다시 말해 상징적인 것 일반으로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상징은 즉시 우리를 또 다른 상환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은 주는 쪽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선물로 드러나지도, 선물로 의미되지도 않아야만 한다.

<주어진 시간> -자크 데리다-

 

인문학적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면, 데리다의 논의는 조금 어렵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기는 주지만, 선물을 주었다는 것을 망각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분명 다음과 같은 반문이 가능할 수도 있다. “선물을 준 다음에 내가 선물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선물을 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매우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질문은 타당한 것일까? 잊지 말아야 할 jt은 데리다가 선물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강조하고 있는 논점은 다른 데 있는 것이 나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선물을 조고서 주었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데리다는 그런 식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는 그런 식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잊으려는 우리의 의지만이 선물을 선물로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가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 다시 말해 선물을 선물로서 주겠다는 의지는 사실 타자와의 사랑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회복하겠다는 의지와 동일한 것이다. 신혼의 어느 부부를 생각해보다. 남편은 아침에 아내가 차려주는 정성스런 식사를 선물로 받게 된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위해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식사를 차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신혼부부가 갖는 설레는 행복의 비밀이 있다. 반대로 월급날이 되면 남편이 가져다준 월급봉투를 아내는 선물로 받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해준 식사의 대가로 남편이 월급을 건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댁은 남편의 월급봉투를 받고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부부는 여전히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대부부의 부부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아내의 식단이 좀 더 나아지고, 동시에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남편의 반찬투정도 심해지기 쉽다. 월급을 받고 아내는 남편의 수고를 떠올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돈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남편으로서 당연히 돈을 벌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어쩌다 아내가 저녁에 늦게 들어와 저녁 식사라도 차려주지 않으면, 남편은 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 집에서 밥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식사를 차리는 것이 아내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선물의 관계가 뇌물의 관계로 변질되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사랑했던 두 남녀는 이미 하나의 교환 관계,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징적인 것 일반에 매몰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신혼부부의 설레는 사랑, 선물을 주고받았던 살 가운 관계가 이제 분업 체께로 흡수되어 증발되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형식적인 상징으로 변한 것이다. 남편은 밥을 먹었으니 돈을 벌어와야만 한다. 이제 그는 가장으로서 수행하는 자신의 노동이 가정 경제를 유지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반대로 그녀는 아내로서 수행하는 가사 노동이 가정 경제를 유지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라고 확신하다. 신혼부부의 사랑을 유지시켰던 선물의 노리가, 마치 음식과 돈이 교환되는 식당에서처럼 뇌물의 논리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는 사랑도 기대할 수 없고, 선물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채권과 채무의 관계, 즉 뇌물의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데리다는 이성 중심주의를 치열하게 비판했던 해체주의 철학자이다. 그렇지만 말년의 그는 기존 사유를 가차 없이 해체하기보다는 마치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우리의 삶에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이성을 포함한 모든 중심을 해체한 이유는 인간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중심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인감의 수만큼 존재한다. 이제 모든 인간은 고유한 삶의 주체가 된 것이다. 말년의 데리다는 삶의 주체가 된 우리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조언한다. 특히 그의 조언은 선물이 가진 역설과 관련되어 빛을 발한다. 선물이 역설적인 것은, 그것이 교환이 아니 교환, 불가능한 교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은, 데리다가 유언처럼 남긴 출고가 지금까지 모든 현명한 사람들이 남기 말을 본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체의 대가 없이 네가 가진 것을 주어야만 한다.” “수확의 기대 없이 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렇다. 데리다는 우리가 너무나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지혜로운 자들의 가르침을 새롭게 되새긴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만 하는 것을 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가르쳐주었다. 이제 우리는 뇌물이 아닌 선물을 주는 지혜를 고민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에게는 설레는 사랑과 진정한 행복의 조그마한 가능성이 찾아들 것이기 때문이다.

Based on '철학이 필요한 시간'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사회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는 여성의 삶을 폭로하며,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마찬가지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리가라이는 통상적인 페미니즘의 이미지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다고 보는 견해 자체를 탐탁하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가라이는 여성이 남성과는 구별되는 존재라는 확실한 입장을 견지한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볼 때, 여성의 법적인 지위가 향상되어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실현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리가라이는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남녀평등 이념 속에서 평등이란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만들어가게 되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남성적 정체성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리가라이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가 희미해지는 상황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왜 이런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여성의 몸은 병이나 거부 반응, 생체 조직의 죽음을 유발하지 않고 자기 안에 생명이 자라도록 관용하는 특수성을 지닌다. 불행히도 문화는 타자를 존중하는 이 구조의 의미를 거의 뒤바꾸어놓았다. 문화는 모자 관계를 종교적 우상으로까지 맹목적으로 숭배했으나, 이 관계가 나타내는 자기 안에서 타자를 관용하는 모델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 남성 위주의 문화는 다른 성이 가져온 것을 사회에서 배제해버린다. 여성의 몸은 차이를 존중하는 반면, 가부장제 사회라는 거대한 몸은 차이를 배제하고 계급 서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 , 우리: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 -이리가라이-

 

이물질이 들어오면, 유기체인 우리 몸은 온갖 면역 체계를 동원하여 그것을 제거하려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와 같은 작은 생명체가 침입해도 온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이리가라이가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임신이다. 자궁 속의 태아는 여성에게 우리 몸에 침입하는 이물질과 유사하게 자신이 아닌 것, 즉 타자로 경험된다. 태아는 자신만의 고유한 체계를 가진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이런 타자와 10개월이나 공존한다. 타자와의 공존이 생물학적으로 확인 가능하나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바로 이로부터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혹은 차이를 견디어낼 수 있는 여성적 감수성이 길러진다.

임신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여성은 온몸이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경험, 즉 생리를 경험한다. 불편함, 무거움, 뼈 속까지 관통하는 통증 등등 생리와 관련된 경험도 이물질의 공존과 버금가는 여성적 감수성의 육체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이리가라이는 여성적 몸, 그리고 여성적 감수성을 토대로 여성적 문화라는 새로운 이념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여성적 문화는 남성적 문화, 혹은 가부장적 문화가 차이를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경향의 강장 반대편에 있다. 이리가라이가 확신하는 것처럼 여성적 문화란 차이를 견디는 문화, 타자를 포용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여성적 문화는 인류 문명의 희망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문화란 언어를 대표로 하는 상징체계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여성적 문화를 추구했던 이리가라이는 심각한 남점에 직면한다. 그것은 여성에게는 자신의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부재하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는 남성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가 차이를 배재하려는 남성적 몸으로부터 유래한 언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성은 남성의 언어라는 외국어를 학습하여,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던 것이다.

 

여성의 담화는 남성을 주체로 지시하며 구체적인 무생물의 대상으로서 세계는 타자의 우주에 속한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여성은 실제 환경과의 관계를 유지하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주체화하지는 못한다. 여성은 구체적인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것을 조직하는 문제는 타자에게 맡긴다.

<, , 우리: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 -이리가라이-

 

이리가라이는 여성의 담화가 자신의 경험과는 이질적인 남성의 담화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 점에서 여성은 구체적인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것을 조직하는 문제는 타자에게 맡긴다는 그녀의 지적은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타자와 차이를 포용하는 여성적 경험이야말로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와 차이가 우글거리는 곳이 바로 현실이자 구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을 표현하는데 있어, 여성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남성의 담화를 통해서만 표현하도록 강제되어 있는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성의 담화가 논리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삶의 중요한 대목은 대부분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애매한 것 아닐까?

탄생은 태어나지 않음과 태어남이 공존하는 경계를 거쳐야만 하고, 사랑도 사랑하지 않음과 사랑함이 공존하는 경계를 넘어서야만 하고, 죽음도 살아 있음과 살아 있지 않음이 공존하는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성의 담화는 사랑에 망설이는 상대방에게 요구한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감수성은 현실이란 모순된 것의 공존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이것은 여성이 자신과 자신 아닌 것, 즉 타자의 공존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리가라이는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담화, 혹은 여성적 언어를 만들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노력을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언어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리가라이의 여성적 문화는 인류의 소망스러운 미래를 위한 문화,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보통 여성은 남성보다 수다스럽고, 혹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는 통념이 있다. 옳은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다 보면, 여성은 언어의 부적절함을 통감하게 된다. 그러니 다시 혹은 자세하게 자신의 말을 다듬어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타자와 차이를 포용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상대방이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등면 반복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남성의 시선에서는 여성의 언어적 표현이 수다르스러움이나 잔소리로 보이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잊지 말자. 타자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이 없다면, 새로운 단어를 찾아 집요하게 표현하려는 노력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타자와의 공존과 소통이 가능한 사회나 문명은 이간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소망일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감수성을 배워야 하고,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 요구만은 아니다.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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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볕

찌옹수

숲들은 새 옷을 갈아입어

그 모습 보기 참 좋구나.

선선한 바람이 부니, 흔들리는 숲들도

더 없이 아름답구나.

 

지나가던 새들도

쉬어가는 저 나뭇가지에

내 생각들도 나란히 앉아 있네.

 

옆집 강아지는 주인이 없는지

꼬릴 흔들며 달려드는구나.

신나게 뛰 놀 더니, 내 다리 베게삼아

쿨쿨대며 잘도 자는구나.

 

내 등을 따뜻이 째주던 그 햇볕은

이젠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쓸쓸히 나만 가득 차 있네.

 

묵묵히 마음껏 걸어도

쉬어 가는 저 새들도, 흔들리는 저 숲들도

결국엔 떠나니, 또 이젠 볼 수 없는 것일까

내 감히 붙잡아둘 수 없네.

 

지독하게 익숙한 상처들도

때론 그 방에 따스한 햇볕이 내리 쨀 때에

그 고마움 잠시남아 그 아픔 잊혀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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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 현대 인문학의 고뇌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2가지이다. ‘타자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타자란 글자 그대로 나와는 다른 사람이나 나오는 다른 사물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무엇인가 나와는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차이를 느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차이의 경험은 결국 다름에 대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별도의 개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낯섦과 조우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두 가지 표현이다.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타자차이라는 개념이 부각되었을까? 이것은 20세기의 인간만이 자신의 욕망, 혹은 자신마의 고유한 내면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흐보다 모차르트가 좋아.” 이렇게 강하게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을 때에만, 나와는 다른 타자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장중한 바흐가 더 좋던데.” 바로 이순간이 타자와의 차이를 경험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과거 사람들은 욕망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금욕이나 절욕이 성숙함의 척도처럼 기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과연 그덧들이 과거 사람들이 우리보다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했다가는 살아남기도 힘든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여성이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녀들은 삼종지도라는 원칙을 맹목적으로 지키면서 살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말에, 결혼해서는 남편이 말에,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남성들은 여성을 타자로 경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거나 숨기고 있는 여성에게서 어떻게 낯섦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생각과 욕망에 상대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만 그는 나에게 타자로 드러날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국가에서든 조화를 최고의 이념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조화라는 이념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가정이 화목하다고 뿌듯해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것은 그녀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실제로는 그녀가 가족들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고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그녀의 욕망에 가족들이 그녀의 욕망에 맞추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화의 이념 속에서는 타자와 차이에 대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다.

 

플라톤 이후부터 사람들은 사회적인 것의 이상을 하나가 됨이라는 이상에서 찾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타자를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을 갖게 되고, 마침내 집단적 표상이나 공동의 이상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우리라고 말하는 집단성이고, 인식 가능한 태양이며, 진리로 향하면서 타자를 자신과 얼굴을 맞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자로 인식하는 집단성이다.

<시간과 타자> -레비나스-

 

타자가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할 때, 그는 스스로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자의 타자성이 나로 환원 될 수 없는 타자만의 고유한 주체성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집단에 매몰되는 순간,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신만의 고유성, 혹은 주체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는 이런 체제로 발생하는 것 아닌가? 히틀러의 지배하에 있던 나치 독일은 전체주의가 발생하는 논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레비나스가 집단성을 타자를 자신과 얼굴을 맞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자로 인식하는것이라고 규정한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이 구절이 그가 전체주의가 발생하는 원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확신한다. 전체주의는 우리가 자신에게 책임의 역량, 즉 타자와 마주하면서 그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망각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말이다.

 

타자와의 관계는 공동체와의 전원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며, 우리가 타자의 입장에서 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공감도 전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에 대해 외재적인 것이다.

<시간과 타자> -레비나스-

 

어머니는 아이가 법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불행히도 그녀의 아이는 영화를 만드는 삶을 가려고 한다. 어머니에게 아이는, 혹은 아이에게 어머니는 타자가 된다. 어머니가 아이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어도 안 된다. 반대로 아이가 어머니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어도 안 된다. 두 경우 모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타자로 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주체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는 강들과 긴장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도 타자와의 관계는 공동체와의 전원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당연히 타자와의 관계는 공감의 관계일 수도 없다. 공감은 유사한 생각과 욕망을 공유하는 집단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나 아이에게 남은 유일한 관계는 책임이란 관계다. 이 관계를 통해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타자로 긍정하면서 그에 부단히 반응할 수 있고, 아이도 자신의 어머니를 타자로 긍정하면서 그에 반응할 수 있다. 완전한 일치도 아니고 완벽한 분리도 아닌 관계.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생각했던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다. 그래서 그는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에 대해 외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전체주의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관계를 찾아냈다. 그의 발견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환원할 수 없는 타자의 타자성과, 그 타자에 대응할 수 있는 책임의 논리가 가장 주요하다. 그에게 있어 타자라는 범주가 주체가 집단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해주었다면, 책임의 논리는 새로운 연대성, 혹은 전체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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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사람들로 전철은 부적댔다. 잠시 정차했던 전철은 갑자기 급발진을 했다. 옆에 있던 어느 여인의 몸이 내게로 쏠리면서 나의 발등을 밟았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팠지만 나는 그녀에게 따질 수가 없었다. 왜 나는 그녀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가? 그녀에게는 내게 고통을 준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전철을 급발진 했던 운전사에게 있을 것이다.

급발진한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밝게 된 여성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자유로운 의사로 내 발을 밟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는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은 다른 여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자유로운 의사로 내 발을 밟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 사실 자유=책임의 논리는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법정에서도 결국 재판은 범죄 행위에 대해 피의자가 어느 정도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재판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항상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따진다.

 

이성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순수하고 실천적인 법치글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 다시 말해 자유의 자율을 표현한다.

<실천이성비반> -칸트-

전체 창조물에 있어서 사람들이 의욕하고,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한낱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따. 오로지 인간만은, 그리고 그 와 더불어 모든 이성적 피조물은 목적 그 자체이다. 인간은 곧 그의 자유의 자율의 힘에 의해, 신성한 도덕 법칙의 주체이다.

<실천이성비판> -칸트-

 

칸트는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고 부르고,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타율적인 사물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해 주인이 목적이라면, 노예는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에서 칸트는 타인과 관계하는 윤리적 원칙을 밝혔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다른 이성적 존재자를 단순히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항상 동시에 목적 자체로 취급해야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을 단순한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항상 동시에 목적 자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칸트의 현실 감각이다. 그는 타인을 수단으로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는 타인을 완전히 수단으로서만 보는 것에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

관습적으로 인정된 선한 행동이라고 해도 인간의 자율적 결정이 없다면 선하다고 인정 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칸트는 혁명적이다. 그렇지만 칸트의 전정한 혁명성은 타인을 수단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있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체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보자는 칸트의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이간이 목적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돈은 수단의 지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ased on '철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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