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deo Modigliani, "Chrisitna", (1913-1914)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기쁨(laetitia)의 정서를 쾌감(titillatio)이나 유쾌함(hilaritas)이라고 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정신과 육체에서 모두 기쁨, 즉 쾌감은 자주 찾아오는 경험은 아니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만 우리는 쾌감을 소망할 수 있다.

섹스, 춤, 그리고 스포츠가 쾌감을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춤이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섹스에서도 쾌감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몸에 기쁨이 찾아오는 경우에 우리는 정신에서도 반드시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로 정신의 기쁨이 필연적으로 몸의 기쁨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남자와 얼떨결에 섹스를 나누게 되었다고 하자.

기대하지도 않았음에도 우리는 너무나 흡족하게 섹스를 즐길 수도 있다.

섹스를 마친 후 그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남자로 보이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남자만 생각해도 전신은 기쁨으로 가득 찰 테니까 말이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 정신을 기쁨에 젖어들게 하는 남자가 있다.

기대감은 품은 채,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자.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섹스에 서툴 뿐만 아니라 전혀 상대방을 배려하지도 않았다.

그 후 과연 이 남자를 떠올렸을 때, 여자는 기쁜 감정을 품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의 몸은 항상 옳지만, 정신은 그릇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피노자가 "우리는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몸이 어느 때 행복을 느끼는지, 그리고 어느 때 불행을 느끼는지 계속 응시해야만 한다.

아무리 정신으로 "이럴 때 자신은 틀림없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해도 직접 몸으로 겪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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