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val Sophie, "Bird amongst flowers", (1979)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우리는 평생 내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타자는 너무나 쉽게 내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간혹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머리에 뭐가 묻었네요. 이리 와서 돌아봐요. 제가 털어 줄께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상의가 바지에서 빠져나와 있으면 나는 어김 없이 그에게 그 사실을 일러 준다.

이건 뒷모습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면을 타자는 마치 거울처럼 비추어 주기 때문이다.

사실 거울보다 수백 배나 더 좋은 요술 거울이 바로 타자라고 할 수 있다.

거울이 현재의 시작적인 모습만 비추어 준다면, 타인은 과거의 모습이나 미래의 모습도 보여 줄 수 있고, 심지어 나의 내면마저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던 장점을 보여 준다면, 나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나의 단점을 보여 준다면, 나는 우울해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경탄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어떻게 내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 그의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그래서 애인은 우리에게 다른 타인이 결코 줄 수 없는 자긍심을 되찾아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의 모든 면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좋은 친구 혹은 좋은 동료일 수는 있어도 말이다.

자신에 대해 자긍심이 떨어진 사람에게 유일한 치료약은 애인이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곘는가.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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