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ise Kisling, "A Young Girl seated with Marguerites", (1950)

감사(gratia) 또는 사은(gratitudo)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사랑의 노력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할까?

물론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의 종류 중 하나가 아니다.

이루러질 수 있는 사랑이 있고,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우리 자신이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사랑이 어떻게 쉬운 감정이겠는가.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하는 법인데!

한 남자와 함께 있으려면, 가족들과 친구들을 놓아야만 한다.

심지어 목숨마저 요구하는 사랑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약한 사람에게 사랑은 삶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는 폭퐁우로 느껴지기도 한다.

약하디 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겠는가.

두려워 하는 것이 많아 이것 저것 따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고뇌와 고민은 항상 약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사랑 앞에서 복잡해져만 가는 생각 끝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사랑이 가져다 주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이기 쉽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 앞에서 고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에 몸을 던지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하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 행복했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더 이상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뿐.

이럴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저처럼 나약하고 모자란 사람을 사랑해 주어서 고맙다."라고.

"지금까지 너무나 행복했었다."라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가급적 다 해 주려고 한다.

하룻밤의 섹스를 원한다면 기꺼이 그와 잠자리를 함께할 수도 있다.

혹은 그가 평상이 원했던 근사한 자동차를 사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행복에 대한 선물이자.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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