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기, "연인", (1978)

"박애(benevolentia)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커풀이나 가족 내부의 문제로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은사회적 차원의 문제에서 다루어져 왔다.

예수의 사랑도 그렇고, 싯다르타의 자비도 그렇고. 공자의 인(仁)도 마찬가지다.

사유재산 제도가 관철되면서 사랑도 사적인 영역으로, 결혼 제도와 일정 정도 관게가 있는 거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적인 차원에 국한되어 있든 공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든 간에, 사랑의 원리는 소유의 원리와 달리 무소유의 원리를 토대로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겨울의 찬바람에 애인이 떨고 있다면, 누구나 기꺼이 추위를 무릅쓰더라도 자신의 옷을 벗어 줄 것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최소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공동체의 범위는 우리가 자신이 가진 것을 어디까지 나우어주느냐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아무리 같은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 같은 도시나 같은 국가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공동체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원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공동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커플 사이에도 무소유의 원칙, 사랑의 원리가 희석되고 있는 불행한 시대다.

합리적인 것처럼 쿨하게 더치페이를 외치고,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바닥에는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강한 소유 의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커플이나 부부 사이에도 사랑의 원리가 훼손되어 있는데, 지역이나 국가 공동체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이런 시대에 전체 인류로 확장되는 사랑의 원리, 즉 박애의 정신이 어떻게 제대로 평가될 수 있겠는가.

연애에서부터라도 차근차근 사랑 연습을 하자.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시대니까.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