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와 사료의 차이점

강신주

지금 먹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까 봐 배고플까 봐 먹어 두는 것은 사료다.

대충 빵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음식.

대충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음식들은 전부 사료라는 것이다.

스님들의 식사를 보면, 혼자서 깔끔하고 정갈한 요리를 즐깁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서 식사를 못합니다.

같이 먹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일단 식사와 사료를 구분을 할 줄 안다면 현재 나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타인과 만나서 식사할 가능성이 높고

혼자서 식사를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만나서도 사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혼자 먹는 건?

편의를 위해, 불편함이 싫어서 식당에서 먹는 것은 고급 사료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누군가를 초대해서 요리를 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 자기는 이 먹고 난 뒤 설거지는 다 자기가 해야 하게 된다.

내 초대 자를 위해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 식사를 먹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불편함이 싫어서 다 말아먹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불편함도 감수하는 게 식사.

불편함을 덜기 위해 집에서 라면에 계란 넣고 밥 넣고 하는 것들은 사료인 것이고

불편함을 덜기 위해 식당을 찾는 것은 고급사료가 되는 것이다.

식사의 또 다른 의미는;

식사한다 와 사랑한다는 동의어다 – Walter Benjamin -

같이 밥 먹는 것이 사랑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 밥을 차려놓고 딴 데로 가시지 않습니다.

먹는 것을 바라보십니다.

지켜보십니다.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 겁니다.

결혼한 부부도, 부인이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고 떠나면 사료되는 것입니다.

음식이 맛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뜻이다.

만약에 어머니와 자식이 밥을 먹다가 자식이 곁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바라보지 않는 다면 어머니는 사료를 먹는 느낌으로 바뀔 것이다.

밥 먹을 땐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음식은 사료다. 하지만 식사와 사랑,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밥 먹을 친구가 필요해 지게 된다.

나랑 같이 밥 먹을 친구.

몸을 위한 다이어트 식단은 괜찮지만, 용모를 위한 다이어트 식단은 사료입니다.

왜냐면 다이어트는 본인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관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다이어트는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시선 때문에 오는 만족인 것을, 스스로의 만족이랑 착각을 하는 것이다. 대중의 사료를 먹게 되는 것이다.

같이 식사를 했는데 뿌듯했다거나, 애정, 사랑이 느껴졌다면 식사라는 것이다.

(같이 먹어서 밥맛이 좋았다면 식사다.)

태어나서 한 끼도 식사를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엄청 많다.

그러니깐 내가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료를 먹어왔다는 것만 알아도 사료를 안 먹으려고 하고 사료대신 식사를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식사를 한번 하더라도 사람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식사와 사료의 구 분점을 반드시 알아두자! 



-------------------------------어떤이의 느낌점 (잉감 (babaa89))--------------------------------------------------------

사료와 식사의 차이란?

정말 뜬금없는 비교였던 것 같다.

왜 동물이 먹는 사료와 인간이 먹는 식사의 차이를 묻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사료는 먹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살기 위해 먹는 음식.

라면을 끓일 때 라면을 넣고, 계란을 넣고, 김치를 넣고, 밥을 말아먹는 것.

이것이 사료이다.

배 속에 들어가면 섞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말아 먹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위한 식사라기 보다, 살기 위해서 시간맞춰 먹는 밥이라는 의미이다.

그에 반해 식사에 대해서는 지인의 초대로 예를 들었다.

만약 후배가 와서 라면을 끓여야 한다면, 정성스럽게 라면을 끓이고 계란을 푼다.

그리고 김치와 밥은 따로 그릇에 담아 정성스럽게 밥을 차린다는 것이다.

그런 후, 후배가 밥을 떠 먹는 모습을 흐믓해하며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따뜻하게 대화를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식사이며, 식사는 곧 사랑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밥을 차려줄 때, 밥만 차리고 자리를 뜨시는가?

아니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가?

만약 밥을 차려주고 그 자리를 뜬다면, 식사는 사료로 변한다.

즉, 내가 차려준 정성스런 밥을 먹는 사람이 느끼기에는 그것은 식사가 아닌, 사료라는 것이다.

아 이 명쾌한 정의.

이 말을 듣고 정말 머리를 쿵 한번 맞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어머니는 피곤해도 내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시면 밥을 차려주셨다.

그리곤 항상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었다.

가끔 피곤해서 대화하기 싫은 나는 짜증을 부린 적도 많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만약에 어머니가 밥만 차려주고 쌩~ 자리를 비웠다면?

나는 아마 혼자서 TV를 보면서 밥을 먹었겟지.? 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항상 혼자 식사를 한다.

근데, 나는 식사가 아닌 사료를 먹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단지 배가고프기 때문에 밥을 먹는 것이었고, 설거지가 하기 귀찮아 그릇하나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아침겸 점심을 먹든지, 점심 겸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입맛이 없다보니 인스턴트음식만 먹게되고.. 그러다보니 소화는 안되고, 이래저래 몸만 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꼭 같이 밥을 먹었고, 혼자서 절대로 밥을 먹지 않았던 나인데..

어느순간 혼자먹는 것이 편해진 내 모습을 보면..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그 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혼자 식사를 하는 시간보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사료가 아닌 식사를 해야겠다. 

'스며드는: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  (0) 2018.10.05
콜럼버스의 달걀  (0) 2018.10.05
피었기 때문에 진다  (0) 2018.10.05
늙음과 젊음의 경계는?  (0) 2018.10.05
간디의 마인드  (0) 2018.10.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