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민, "붉은 방", (2003)


"야심(ambitio)이란 모든 감정을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 정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욕망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야심에 동시에 묶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상한 사람들도 명예욕에 지배된다. 특히 철학자들까지도 명예를 경멸해야 한다고 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야심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특정 다수들로부터 시기와 관심, 그리고 찬양과 찬탄을 바등려고 한다.

나를 찬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찬양하기만 하면, 우리는 쓰레기와 같은 사람도 보석으로 둔갑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학창 시절을 한번 돌아보자.

다음과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첫 강의를 듣자마자 우리는 직관적으로 교수의 강의가 보잘것없다는 것, 심지어는 강의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리포트를 제출하고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교수가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교수가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제대로 인정해 준 사람이 이 만큼 훌륭한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논리가 심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야심이 강한 사람은 너무나 취약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칭찬해 주면 사족을 못 쓰는 아기와도 같다.

그러니까 강해 보여도 야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고 하고, 당연히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자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전쟁이라고 할 때, 이렇게 '지피지기'를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삶이나마 제대로 보존할 수 있겠는가.

직급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야심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러면 진짜 위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야심이 커질수록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감정들이 모조리 고사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야심은 아카시아나무와도 같다.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깊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아카시아나무 말이다.

그렇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야심은, 적절히 통제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마음속에 다른 수많은 감정들도 자기 결을 따라 제대로 자라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그 만큼 더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Based on


감정수업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켜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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