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소프트회사 오픈 세미나

"강신주 행복강의"

강신주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우리의 기본 전재가 하나 있는데요. ‘나는 불행하다, 나는 고독하다, 나는 외롭다’라는 전재를 가지고 사셔야 해요. 이 전재가 맞아요. 왜냐면 여러분들이 아프고 외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공감하지 못해요. 내가 너무 마음이 쓰린데, 옆에 친구가 와서 “알아. 괜찮아” 이렇게 위로를 해줘도 민감하신 분은 금방 알아요. 그 친구는 몰라요. 모르면서도 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진 내면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해요. 그런데 우리가 어휘를 쓰잖아요. ‘슬퍼’ ‘우울해’ ‘즐거워’ 이렇게 쓰다보니깐 다른 사람이 말하는 즐거움이 내가 느꼈던 그 즐거움과 비슷하리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절대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여러분들이 느꼈던 것을 아무도 못 느껴요. 그런데 우리가 왜 고마운 줄 아세요? 못 느끼는 놈이 밤새도록 나를 위로해주는 거예요. 그것을 아셔야 해요.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것은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나의 고독이, 나의 불행이, 나의 외로움이 달래진거에요. 그래서 진짜로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면, 그 사람이 나를 떠나려고 할 때 “지금까지 고마웠어.” 라고 얘길 해요. 하지만 우린 죽일 듯이 달려든단 말이에요.


             남자친구 있어요? 남자친구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럴 땐, 눈물 흘리면서 고맙다고 해야 되는 거예요. 더 함께 있어주면 좋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을 내미는 것이고, 그 사람은 잡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관계인데. 만약에 한쪽에서 손을 놓는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손 잘라서 잡고 있을까?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려고 그래도 못 잡아요. 우리는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이해 되셨나요? 고마움을 느끼시나요? 느껴요?


             홀로 남은 것은 당연한 거예요! 오버하질 말란 말이에요. 나는 외롭지 않고, 나는 사람들이랑 있어야한다는 이 오만을 버려야지, 우린 행복이 뭔지 안다니까요! 그냥 고마워해야 돼요. 그것을 잘 아셔야 되요, ‘나는 외롭다. 죽을 때까지 외롭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나의 고통도 몰라요.’ 그런데 내가 아파하니깐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고, 내가 웃으니깐 같이 웃어줄려 그래요. 그런 사람이 나한테 있는 거예요. 당연히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것이에요.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눈 감을 때, 그냥 눈 감구요.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여러분들은 그냥 태어 난거에요. 우린 그렇게 있다가 그렇게 가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나는 행복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라는 전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만해요.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떠날 때면 우리는 못 떠나게 하려고 찌르고, 상처를 줘요. 그러니깐, 누군가가 나에게 온건 너무 고마운 거예요. 아까 얘기 했듯이, 누군가가 떠나가면,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라고 해야 되는 거예요. 이 얘길 하다보면, 매번 그 사람이 고마운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아내라면, 남편이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안 들어 올 수 도 있었는데, 오늘 들어와서 고맙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죠, 당연히 일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야 된다고. 만약 안 들어오면 우린 뭐라고 그러죠? 온갖 안 좋은 말을 하죠. 이렇게 문제는 시작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남편을 가지죠? 못 가져요! 우린 내면조차 헤아리지 못해요. 남편이 우울하다고 생각할 때, 아내는 안다고 생각해요. 우린 몰라요! 그저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우울해보이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어차피 못 느끼니깐 난 몰라. 어쩔 수 없어’ 가 아니고, 옆에서 그냥 있어주며 헤아려 보려고 그러기. 그런데 헤아려지진 못해요. 여러분들은 그러실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만약에, 남편이 일주일 동안 안돌아 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 되요. 기다리다가 남편이 들어오면요? 따듯한 차라도 내드려야지. 그렇죠? 그리곤 고맙다고 들어와 줘서 해야겠죠? 그러실 수 있겠어요? 우린 보통 못 그러죠. 왜냐면 우린 이미 그 사람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린 이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두 분은 결국 행복하지 못해요. 남편이 불우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아플 수도 있고. 그런 건 생각 안 해보셨죠?...


             아이도 똑같아요. 나에게 온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독립해서 떠날 때 있죠. 그럴 땐 이러는 거예요, 지금까지 엄마랑 있어주고 가급적 엄마 말 들어줄려 그래서 고맙다고.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사람은 타인을 소유하지 못해요. 나는 손을 내미는 것 밖에 못하죠. 너무 고맙죠? 너무 고마운 거예요. 프러포즈할 때 누군가 손을 내밀죠? 그리고 상대방이 잡죠? 그러면 고마운 거예요. 만약 상대방이 손을 빼려고 할 때 있죠? 그러면, 손이 떨면서, ‘이제 손을 때려나보다’ 라고 느끼죠? 그 사람이 살아서 떠나려니 깐 여러분들이 속상한지도 몰라요. 대게, 우리는 ‘살아서는 못 보내겠다!’ 혹은 ‘내 눈에 흙이 들어올 때까지 못 보내겠다!’ 라는 생각이란 말이죠.


             만약에 한 여자가 남자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웃긴 건, 그 여자가 죽으면 용서 한다!? 대게 우린 살아서 다른 사람과 행복한 꼴을 못 봐요. 대체 이건 무슨 감정일까요? 뭘까요? 이건 소유에요. 사랑이 소유던가요? 사랑은 소유랑 반대란 말이에요. 이것이 진짜 우리가 행복에 대해 고민해야 될 때, 기본 전재에요.


             기본전재는 ‘나는 고독하고 외롭다’ 이에요. 나의 고독을 아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낀다. 이것을 아셔야 되요. 그럴 때, 카페에 혼자 있는 것 이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그 시간에 친구가 앞에 앉았을 때, 고맙죠.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친구를 만나야 되는데. 우리는 대게 당연히 친구가 앞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이러면 우리는 오만해지는 거구요, 나중에 그 친구가 떠나려고 해요, 왜냐면 소유 당했다는 것처럼 불쾌한 경험은 없거든요.


             기본전재는 ‘나는 고독하고 외롭다’ 이에요. 그러면은 어머니도 귀찮게 안 느껴진단 말이에요. 어머니가 자꾸 잔소리하면 귀찮죠?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당신은 외롭지 않은 거예요. 내가 처절하게 외롭다는 것을 알아야,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들어도 좋다는 거예요. 노을이 예쁠 때도 좋아요. “아... 오늘 노을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라고 느끼면요. 눈이 와도 좋은 거예요. 이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잖아요? 행복을 추구할 때 직감적으로 느껴야 되요. 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죠? 왜냐면 우린 불행하거든요. 우리 기본전재는 불행이고 고독이에요. 그런데 행복이 달아나는 것 같이 느끼시죠? 그것은 때때로 힘들어요. 이건 나 혼자 추구할 것이 아니에요. 카페에 혼자 앉아있을 때, 친구 또는 아는 사람이 와있었을 때 잠시 동안의 완화된 고통. 죽을 때까지 그것은 지워지지 않아요. 다시 또 기다릴 거예요, 늙어서도. 남편이 먼저 떠나갈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 누구도 떠나가는 사람을 잡을 순 없어요. 아이를 키울 때도 이렇게 키워야 되는 거예요.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거든요. 만약 저 사람은 내꺼다, 내 소유라고 했었을 때, 여러분은 그다음부터는 너무 힘들게 살게 되어 있어요.


             역설적이지만, 행복의 출발은 내가 고독하고 불행하다는 자각을 해야 돼요.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하다. 처절하게 느꼈을 때, 처절하게 느껴졌을 때만 타인과 같이 있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서야 알게 될 거에요.


             우린 덜 외롭나 봐요?! 덜 고통스러운가 봐요! 그러니깐 사람들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귀찮아하죠. 우리는 더 외로워져야 되요. 더 외로워야 노숙자 아저씨든 그 누구도 고맙다는 거. 여러분들이 만약에 혼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자그마치 한 달 동안 지하철을 탄다고 생각해보세요. 신문을 읽으시면서 문제들을 막 욕하시는 할아버지께서 타시면 너무 고맙죠?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히 여기는 거 같아요. 친구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을 해요. 행복은 누가 누리는지 아세요? 바닥까지 외로운 사람이, 바닥까지 외로운 사람이 누린단 말이에요. 이건 사실이라고요. 이럴 때만, 나한테만 잠자리 한 마리가 날려들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꽃 하나 폈을 때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아요.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한단 말이에요!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은 내가 불행하기 때문에 그래요. 애초에 에덴동산은 외로웠다라고 전 단언해요. 너무 고통스러운 공간이었을 거예요.


             행복이 있는데, 나는 왜 행복을 잃어버린 거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외롭고, 불행하고, 고독해요. 인제, 이것만 가슴에 새겨도, 이 글을 읽는 게 끝나면, 여러분들은 세상에 대해 민감해 질 거예요. 나중에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길을 물으면, 너무 고마워질 거예요. 마음의 관념의 조작을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우린 외로우니깐. 그리고 우린 고독하고 그 누구도 내 속을 몰라요. 우린 착각을 한단 말이에요.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 그때의 그 느낌 때문에 상대방의 행복하다, 기쁘다고 했을 때 나는 연상을 할 뿐이에요. 달라요. 친구랑 영화만 봐도 알걸요? 서로 다른 부분에서 감명을 받을 때 말이에요.


여자 친구 혹은 아내가 나를 아는구나. 착가하지 마세요.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는 거예요. 짐작하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 구나. 그것이 정답이거든요. 그런데 모를 때도 있잖아요. 모를 때도 있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거기서부터 출발을 하는 겁니다.


             일단 여러분들은 그것부터 출발하시면 성공하신 거예요. 자, 우리 자신을 축소 해봅시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모르게 아주 축소 해봅시다. 그럴 때 내가 왜 사람들이 필요한지.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거 있죠, 마치 통나무가 물에 동동 떠내려가다 누군가가 잡는 것처럼, 그때 여러분들은 행복이 뭔지를 알게 될 거에요. 이럴 때 우리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으셔야 해요. 나중에 눈 감을 때 정도 되면 다 알아요. 아무도 나를 안 쫓아와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쫓아가지도 못해요. 그때 돼서 알아요. 우리 이랬었구나. 해어질 때 보면 안단 말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떠날 때.



고독은 견디는 것이다.


고독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못된 거 같아요. 고독은 견디는 거예요.


예를 하나 들게요. ‘한 남자가 A여자와 사귀다 B여자를 보니 더 좋아 보여서 B여자를 좋아하게 됐어요.’ 이것과 ‘한 남자가 C여자와 사귀는데 아무리해도 서로 이해를 해주려고 안 해서 C여자와 헤어지고 아무여자도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 D여자를 만나서 사귀게 됐어요.’ 것과 다르죠?


이 두 가지의 다름을 알아야 되요. 두 번째 예에서 C여자와 헤어지고 아무것도 안 같은 외로운 상태를 견뎌야 되요. 그 견딘 만큼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할 수 있는 거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엄마와 baby상태에 되어있거든요.


첫사랑, 첫 여자는 그 남자와 어머니 사이의 탯줄을 끊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첫사랑과는 결혼을 안 해요. 피를 역긴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자존심 같은 거예요. ‘남자가 첫사랑인데 나랑 같이 사귀고 있다’ 이건 첫사랑이 아니란 말이에요. 첫사랑은 그 역할만 해주는 거예요.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면, 귀가를 늦게 하게 되고 엄마말도 안 듣게 되요. 첫 번째 예에서 A여자는 남자의 엄마와 끊어지게 해준 것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바로 B여자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두 번째 예에서 C여자와 헤어지고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느냐 마느냐가 어른이 되냐 안 되냐가 남자가 결정하는 거예요. 하지만 대게 남자들은 첫 번째 예와 같이 여자들을 갈아타다가 그냥 그렇게 살게 되는데, 두 번째 예와 같이 한 여자와 헤어지면 그 여잘 잊어버리고 혼자 고독을 견디다 다른 여자와 사귀게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에요. 이와 같이 고독을 견뎌보았나요? 이 고독은 즐기는 문제가 아니고 견디는 문제예요.


             선배, 어머니, 아버지, 친구, 등 혼자 있을 땐 고독을 즐기는 게 아니에요. 말을 걸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거 모르시죠? 말 걸어보세요. 아닐 수 도 있어요. 하지만 말을 걸어보세요.


             자! 우린 고독하고 외롭고 불행하다는 전재를 가지고 있어야 되요. 하지만 그 고독을 즐기는 건 아니에요. 견디는 거예요. 견딜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는 거고 성숙해지는 거예요. 아셨죠? 금방 누군가 떠났다고 외롭다고 심심하다고 누군가를 찾는다고 이러지 않는 것. Baby처럼 징징거리지 않기. 이게 성숙해지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하셔야 되요. 그렇게 하셨을 때, 여러분들은 어른이 되고 그 다음에 행복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할 수 있게 되죠.


             다시 말할게요. 우린 외롭고 고독하다는 전재 하나, 그리고 그 깊이 여러분의 성숙도의 깊이고 그 깊이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다음부터는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시를 읽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거예요. 묘한 일이 일어지죠? 그죠? 책 하나를 딱 꺼내들었을 때 그 이야기가 날 위로해주는지 알아요. 그 때부터요. 왜 우리가 책이 잘 안 읽히는지 아세요? 우리는 어리기 때문이에요. 진짜 외롭게, 외로운 그 상태에서 서점에가 봐요. 그게 얼마나 황홀한 건지. 어느 작가의 글을 볼 때 그 외로웠던 시간이 흘러가게 되는 거예요. 너무 재밌게. 이렇게 책을 읽는 거예요. 아직은 내가 책을 안 읽을 나이일지도 몰라요. 언제 책이 잘 읽히는지 아세요? 실연됐을 때. 그럴 때 안 읽던 책을 읽게 되고, 안 듣던 다른 장르의 노래를 듣게 되는 거예요. 여자와 남자, 둘이 다 아주 힘들게 외로워서 만나게 얼마나 좋을까요?


             아주 힘들게 외롭고 고독했던 사람들은 어떤지 아세요? 고독을 견딘 사람들은 성숙하다 그랬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는 거죠. 얼마나 고마워요? 여러분들이 너무나 힘들고 외로울 때 부모님의 잔소리가 들린단 말이에요. 여러분 이건 굉장히 중요한 가치에요. ‘나는 주변이 항상 사람들과 친구들이 많아.’, 이것은 어린애에요. 혼자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니까요!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얘길 해도 듣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에요. 이게 정말 소중한 일이죠. 고독은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겁니다.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독해져야 합니다. 아주 강도 높게 하면 할수록 고독의 연습들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어요. 분명해요. 그런데 고독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지고, 너무 빨리 결혼을 하고, 너무 빨리 아이를 낳아버린다고.. 고독을 내가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우린 너무 무서워한단 말이에요. 이것을 감당하셔야 되요.


             우리가 공동체를 꾸밀 때가 있을 때 참 다른 거죠. 그러니깐, 공동체는 개개인의 고독이 확보되어 있어야 되고요. 확보되지 않는 공동체는 바삐 움직여야 되면 우리는 안 돼요. 자유의 내용을 아세요? 고독할 수 있는 시간과 가치란 말이에요. 낮에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여기에 고독이 어디에 있어요?! 고독의 시간이 종료되거든요. 여러분들이 자유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고독의 시간이 있다는 거예요. 100%. 공동체가 고독을 허용해야 된다는 거. 집이 왜 갑갑한지 아세요? 고독할 시간을 않주기 때문이죠.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고독할 때 그 고독을 터치 안합니다. 바보들만 “무슨 일이야? 얘기해봐!”이러죠. 그런 사람은 빨리 헤어지세요. 진짜 힘들거든요. 나와 무관하게 자기세계에 들어오는 걸 우린 못 견뎌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자유를 인정 안 하는 거예요. 말하게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세요? 법에서 중요한 게 묵비권이에요. 말하게 하는 방법 중 유명한건 고문이잖아요. 침묵의 권리, 이것이 확보되는 공동체가 있을까.. 그러니깐 우리한테 공동체는요 개돼지들이 집단으로 있는 게 아니에요. 친구 둘이 막 떠들게 되면 나는 저 친구들이랑 있어서 침묵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어쩌면, 상대방이 고독하게 있는 거 보면 힘들죠? ‘나랑 좀 얘기를 해주지’, 이래도 얘기 안하기. 그것을 견뎌내기. 이게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가치죠. 고독할 권리. 타인을 배려한다면, 침묵할 권리를 줘야 되고 고독할 시간을 줘야 되고 고독을 깨지 않아야 되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세요? 왜냐하면 모든 어른은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에. 고독의 깊이를 깨달은 분이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이 부모의 고독을 해치죠? 책을 읽거나, 음악 듣고, 시를 읽을 때 아이들이 그 고독할 시간을 해치죠? 만약 아이가 성숙해지면, ‘엄마 건들이지 말아야지’ 하며 아이는 조심히 지나가죠. 성숙이 그거에요. 나 자신의 고독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독에 침묵하고 힘들지만 견뎌낼 수 있느냐. 이게 또 하나의 잣대죠. 일단, 그것을 마음속에 아려 새겨야 하거든요. 인문학을 공부하거나 문학을 공부하거나 기타 등등을 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건 고독이에요. 일단 내가 고독해야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깐. 고맙게.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그래서 이제 행복이라는 게 대충 어떤 모습인지 알겠죠? 고독한 내가 고통으로부터 완화시켜주는 상대 혹은 애완동물이여도 상관없어요. 영화, 소설, 음악, 사람이여도 좋아요.


알랭 바디우 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라는 말을 해요. 이 정의에 맞게 사랑하시는 분은 5%로도 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무슨 뜻이냐면, 두 사람이 주인공 인거에요. 예를 들어, 남녀관계로 따지면, 내가 남자주인공 그 사람은 여자주인공이 되는 거죠. 주인공이 뭔지 아시죠? 주연이에요! 조연이 아니라는 거예요! 둘의 경험은 둘이가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에요.


분명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서 여자 친구는 나와 같이 있어주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의 욕심이 뭔지 아시죠? 저 남자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저 여자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거란 말이에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이 세상에서 언제 있어요?! 여러분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1차적인 느낌들이 뭐냐 하면 그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뒤로 그 사람 뒤로 물러나요. 예를 들면, 어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도 사랑하는 남자는 보인단 말이에요. 그런데 자꾸 다른 남자들이 보이게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왜 다른 사람을 잘 대해주나요?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그 사람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길 원하기 때문이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언제해요?! 아이를 키울 때도 똑같은 거예요. 아이가 주인공이 되야되요. 그런데 어머니가 오버를 해서 옆집 아이와 비교를 하고 일등 하는 아이와 비교를 해요. 더 이상 이 아이는 주인고이 아니죠? 그 아이가 왜 집에 들어가겠어요? 나 같으면 음악실이나 피씨 방에 가겠다. 우리는 주인공이 되는 곳으로 가요.


만약에 어떤 공동체나 회사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곳으로 갈 거예요? 아니면 노예로 만드는 쪽으로 가실건가요?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비하하는 쪽으로는 안 간단 말이에요. 나를 비하하는 친구나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어 하겠어요? 안 간다고요. 한 남자가 결혼을 해도 아버지역할을 못할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아들이랑 같이 토요일에 축구하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지금 이일만 승취하면 승진시켜주겠다며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실래요? 만약에 아들과 약속을 안 지키고 회사에 가면 아들은 아버지 존경 안 해요. 왜냐면 아들이 중심이 아닌 거죠.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갔다고 나중에 변명할 수 있죠.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게 될 거예요. 아들이 주인공이여야 되는 거예요. 주인공을 버리고 주연한테 갈 거예요? 누가 주인공이고 주연이죠? 그걸 아셔야 되요.


혹시 딸이나 아들 있으세요? 빨리 장가를 보내는 방법을 아세요? 계속 괴롭히면 누군가가 조금만 잘해줘도 그 사람한테 장가가게 되어있어요. 이렇게 되면 행복의 잣대가 너무 낫게 되어 그것밖에 살지 못 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딸을 너무 행복하게 주인공으로 만들어 키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이상으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말이에요.


             우린 언제 제일 행복하죠? 누군가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때죠? 예를 들어, 이벤트를 해주면 행복해 하게 되는데 이벤트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니깐 행복한 거예요. 무슨 말인 줄 알죠? 사랑을 하다 깨어져버리면 왜 힘든 줄 아세요? 자기가 주인공인 순간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깐 간절해지죠. 그 누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까? 이게 우리가 찾는 거예요.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 나의 자존감을 훼손치 않는 것인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최고의 고민이 뭐일 거 같아요? 성생활이에요. 이걸 아셔야 되요. 죽을 때까지 남자 여자는 사랑하고 싶어 하나 봐요.


결혼하고 나면 편해졌다고 옷도 마음대로 벗고, 방귀도 끼고 막 그래도 되는 거예요? 막 해도 되는 거예요? 남편이든 아내든 먼저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뭐라도 해서 주인공을 반기는 게 맞는 거죠? 그건 이상한 문제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밥 항상 해주시죠? 아파도 해주시죠? 그런데 아프면 하면 안 돼요. 만약에 어머니가 밥을 안 해주면 우리는 왜 안 해주냐고 물어보겠죠? 아프다고 말하면 우리는 혼자 밥을 차려서 먹어야 되는 게예요. 그렇게 해야, 나중에 어머니가 밥을 해줘도 고맙다고 여기게 되는 거예요. 이걸 아셔야 되요. 여러분들이 스스로 주인이 안 되면 주인대접 못 받아요.


아 진짜 힘든 거예요. 누군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거. 그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주인공 대접을 받나요? 왜 사랑이 매력적이냐면, 내가 주인공이 되기 때문 인거에요. 그래서 결혼생활이 위험한 거예요. 결혼생활은 자기가 주인공 되기가 쉽기 않기 때문이죠. 너무 편해지게 되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걸 잊어버리게 될 수 도 있고 자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아내 혹은 남편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죠.


그래서 황지우 시인이 했던 말이 맞는 거예요.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대해주죠? 헌신적으로? 잘 해준다함은 주인공으로 만들어줌 이죠? 자존감을 해치지 않는 거고요. 너는 너를 결정할 수 있고요. 너는 당당한 사람이고요. 이걸 보여주는 거죠. 음식점에 가서도 음식을 그냥 시키는 게 아니라 뭐 먹고 싶니 라고 먼저 묻는 게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죠? 당연한 거죠?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왜 그렇게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냐고요? 왜냐면 그렇게 해야만 그 사람이 나를 주인공으로 대해주기 때문이죠. 황지우 시인은 한마디 더 말하죠. ‘이기적인 사람은 이타적이진 않아요.’ 이타심은 이기심이지만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 주인공으로 대해줄 때 우리는 행복을 느껴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끼죠. 여러분은 여러분 삶의 주인공이세요?


 


사랑 = 자유 → 행복


             사랑을 하면요 그 사람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요. 내가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든다고요.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거든요. 자유는 주인의 것이죠. 그렇죠?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에요. 어떤 교수가 묻더군요. “어떻게 사랑과 자유의 뜻은 모순되는데 어떻게 같다는 거죠?” 여러분들 아시죠? 사랑은 그 사람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 어른만이, 독립된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비겁하고 겁이 많아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걸어가는데 깡패들이 우릴 둘러쌀 때 깡패들이 말하길 무릎을 꿇으라고. 여러분들이 저 사람이면 무릎 꿇어요? 싸운다니깐! 여자 친구랑 안 가기만해도 백번이라도 꿇을 내가 싸운다니깐 요?!


             거꾸로 말해도 되요 자유롭고 주인인 사람만이 사랑을 해야 되죠. 힘들지도 몰라요. 사랑하면요 자유를 배워야 되요. 사랑해도 되요. 대신 남자든 여자든 빨리 결혼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완전 강해져서 자유를 알 때 그때쯤 돼서 결혼해야 되요. 이제 사랑과 자유가 왜 같은 줄 아시겠죠? 왜 부모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되죠? 자본으로부터 왜 독립해야 돼요? 사랑해야 되니깐. 기본 조건이라고요! 잘못하면 아이도 사랑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사랑을 하면 자유로워야 되는 것을 알게 돼 있어요.


             회사 사장이 카톡 하나 왔다고 아들과 약속한 것을 깨버리고 회사로 곧장 가실건가요? 사랑하는 아들이 앞에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텐데? 나중에 변명해도 아들은 직감적으로 알텐데? 이걸 정확히 하셔야되요.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어른들 이신가요? 여러분들을 감당하시나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나요? 행복해지는거 더럽게 힘들어요! 어떻게 보면 ‘인간은 고독하다’ 라는 건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은 쉬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주인공으로 만들어라’를 같이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진짜 힘들어요. 사랑하는거 지키기 힘들어요... 내가 비겁해서, 사랑하는거 지키기 너무 힘들단 말이에요. 아셨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본에도 타협하지 않고, 관섭에도 타협하지 것. 당연히 회사엔 CEO가 있고 그의 말대로 해야 되고, 당연히 나라는 권력이 있어서 그 권력을 따라야하고, 등등 이렇게 생각하는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가 있어요? 우린 대게 대충 타협하면서 사는거 일지도 몰라요. 사랑한다는거와 사랑한다는 제스처를 하는 것을 달라요.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라는게 정말 무섭죠? 그래서 우리는 맞서 싸워야해요. 어떻게 하면 주인공으로 만들까하면서 우리는 맞써 싸워야해요. 만약에 감당이 않되면 누구를 불행하게 하는거에요. 까먹지 마세요! 나 때문에 그 사람이 불행해지는거에요. 이렇게 생각해도 되요.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이 사람은 충분히 주인공으로 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참의 의식을 가지고 사시는 것이 더 정직해요.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가지면 절대 않된다는거에요!


             몇 프로를 감당할까요? 사랑과 자유가 같다는 거. 어른만이 사랑해야 된 다는 거. 주인만이 사랑해야 된 다라 거.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키는 사람만이 사랑해야 된다는 거. 사랑은 항상 우리에게 얘기하고 상대방은 우릴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여러분들은 나가면 노예행세를 하잖아요. 상대방이 애써서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면 주인공으로 살아야지! 바로 끝나자마자 굽실굽실 거리고 그리고 나선 “너를 위해서”라고 합리화 시키죠. 뭐가 너를 위한 겁니까? 자지가 무서워 놓고서. 이런 자각에 우리가 어떻게 반성할 수 있을까 이게 문제죠.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해요. 왜냐면 저 과정으로 인해 누군가가 자유로워지고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죠. 너무 멋있잖아요.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여자 분들도 사랑하게 되면 과감하게 부모님말도 어기잖아요. 그렇죠? 부모님 돈도 훔치고.


             인생에 있어서 자지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사랑이에요.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감당하는 것은 사랑이에요. 자긍심, 자존심이에요. 아셨죠? 내가 살만한 가치가 있고 나는 주인공 이고 이런 거를 가르쳐 주는 게 사랑이라고요. 그래서 매력적이라고요. 바로 그 부분이 없어졌을 때,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떠들어도 사랑은 없는 거예요. 둘을 경험하고 있을때만 사랑이라고 얘길할 수 있는거라고요. 사랑하는거 정말 힘들어요. 스피노자가            혼자 에티카를 딱 쓰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죠. “행복이라는게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다면...” 그렇죠? 행복에 도달한 사람은 별로 없어요.


             첫째, 고독에 대한 가치와 외로움에 대한 가치를 기억하세요. 이건 정말 도움되요. 왜녀하면 외로움을 견딘다는 것은 주인공이 주인공이 됬다라는 얘기에요. “놀아줘” 이러지 않는다는거에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가치에요. 외로울 때 전화걸지 않기. 무슨 소리인줄 알죠? 외로운건 외로운 거니까. 이게 주인공되는 하나의 연습일테고 그게 없으면 누구 사랑하면 않되. 놀아주는 사람이 애인 인가요? 나를 재밌게 해주는 사람이? 그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엄격한 잣대를 기억하세요. 사랑하는 감정에 있어서 둘의 경험이다. 여기서 사랑과 자유가 무엇인지. 사랑은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거에요 주인공으로. 그리고 그 사람이 자유로와 졌을 때 내가 주인공이 되는. 아셧죠?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남녀관계, 자식관계, 인간관계, 등등. 어떤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면 사랑한거에요. 그 작가를 우리가 어떻게 떠나요. 작가가 쓴 글만 보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데? 모든지 그래요. 이러한 가치들을 절대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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