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에게 '산다는 것'은?


고래에게 '산다는 것' 은 움직이는 것이다.

- 돌고래 보존 운동가, 릭 오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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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웃을 수 있는 것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게 꼭 필요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고

훗날 웃을 수 있는게

지금의 어려움 때문에 웃을 수 있지.

그런 어려움을 못 겪으면

훗날 웃을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애.

봄이 아름다운게 혹독한 겨울이 있었다는 것이거든.

겨울이 없었더라면 봄에 대한 아름다움을 얘기 할 수 없잖아.

그래서 겨울이 오히려 봄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거지.

모든 작물들도 그 긴 겨울을 고통 속애서 이겨냈을 때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고 싹이 트고 

여름에 꽃을 피울 수 있거든.


-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


누가 미친거요?

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당신이 미친거요?


- 돈키호테 -

냄새도 나고 온갖 잡동사니가 섞여있어요.

그러나 거기에서 가만히 있는 거 같아도

다 (어딘가에) 쓰이기 마련이고 그래요.


-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


성장에 익숙한 삶과 결별하라

우경임, 이경주

 

발행: 2015.12.10

발행처: 글담

페이지: 216 pgs

 

삶의 진정한 알맹이는 필요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중하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데 달려있다.

- Mahatma Gandhi -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성장이 멈추듯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지금 같은 저성장시대를 어떻게 체화(Change)해 나갈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때다.

생산시설이 점점 자동화되어 간다.

사무실일도 컴퓨터가 대체되고 있다.

공장들은 해외로 떠나간다. (싼 노동력 / 낮은 세금)

한국 대학 진학률은 70%가 넘는다.

OECE 회원국 청년층의 학력 = 고졸이하 63% / 대졸이상 37%

경제구조상 대학 졸업자에게 걸맞은 일자리는 많이 생길 수 없으니 눈 높이에 맞는 일자리르 찾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평생직장은 사라진지 오래다.

고용불안은 인생에서 이례적인 위험이 아니라, 일상화된 위험이 되었다.

빈부격차뿐 아니라 희망 격차가 틀어져 간다.

어느 시대에도 젊은이 이렇게 우울한 적은 없었다.

 

"학력 인플레"의 원인

대학 X → 좋은 직장 X → 안정적인 직장 X → 결혼 X → 경력이 쌓이면 소득격차 큼.

그래서 대학 진급이 합리적인 선택.

스펙이 모자라 취업을 못하는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경쟁력이 없다고 좌절해야하는 것인가?

 

Secion 2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책의 작가 → 미국 생활 1년 → 거주기간 한정되어 있어 소유라는 개념을 버려야 했다 → 한국으로 들고 갈 수 없으니 아무리 좋은 가구/자동차도 짐으로 보였다 → 1년 후 → 최대한 간소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처분할 물건이 이렇게나 많았고, 단 1년인데 수십년간 얼마나 필요없는 물건을 사들이며 살았는지 되물었다

 

넓은 집과 비싼 자동차를 사기 위해 빚을 지고, 노동시간을 늘려야 하고,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면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소비를 위해, 소비로 늘어난 빚을 갚기위해 맞벌이 하는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맞벌이 →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없어져 감 → 가족끼리 저녁 먹는 시간 없어져 감 → 아이는 남의 손에 맡겨진다 → 친구/이웃과의 관계도 질이 떨어짐.

부부가 같이 일해도, 타인과 비교했을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심해진다.

통계청 '2013년 사회 조사 결과' (스스로 느낀다는 결과)

하층 = 46.7%

중간층 = 51.4%

상층 = 1.9%

저성장시대에는 소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부여하던 패헌을 바꾸지 않으면 행복해지기 힘들다.

우리 사회는 갑자기 절약은 촌스럽게 느껴지고 소비가 미덕이 되었다.

 

오히려 대부분 자신은 비싸고 희귀한 물건을 소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소비를 덜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사치열병>

Robert H. Frank (미국 경제학자)

 

 

"필요해서 물건을 사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가진 어떤 계층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산다."

<소비의 사회>

Jean Baudrillard (철학자/사회학자/미디어 이론가)

 

현대 사회는 개인의 욕망에 바탕을 둔 소비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셈이다.

요즘 가난은 굶주림이 아니라 소비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해도 무방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을 구매할 청년 인구 줄어든다.

취직을 못하니 집을 살 여유도 없다.

2014년, 우리나라 가계부채 = 1,025조원 (2배 이상)

2004년, 우리나라 가계부채 = 494조원

과연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온 가족의 삶의 터전인가, 평생을 저당 잡히는 굴레인가?

회사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보니 집을 마려해도 막상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짧다.

결국 행복지수가 낮아진다.

 

빚이 있으면 월급이 내 삶의 '갑'이 된다.

노동시간이 늘면 돈은 더 벌겠지만 행복감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일과 소비'라는 쳇바퀴를 굴리기 시작하면 속도를 줄이기 조차 쉽지 않다.

도대체 우리에게 집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집은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드러내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 아니었을까?

 

(2012년 한국개발연구원) 소득분위별 사교육비와 수능점수 비교 발표를 보면 안탑깝게도 사교육비 지출액이 클수록 수능 점수도 높아졌다.

이걸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아이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남의 아이를 기준삼아 '교육 잘 시킨다'는 평가를 내렸던 셈이다. 맹목적인 경쟁으로 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아예 잊고 살았다."라고 이 책의 지은이는 고백했다.

 

자녀의 성공이 노후를 보장해주는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공부를 잘한다고해서 성공하는것도 아니여, 성장속도가 느려진 사회에서 자식이 제 앞가림하기도 버거우니 부모를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1인가구 늘어나는 이유.

왜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을까?

34.2% = 경제적 문제

27.9% = 직장 문제 (결국 경제적 문제)

11.5% = 현재 삶에 만족

지금의 청년층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 이해 해야할 것이다.

 

건강한 가족이 되려면 가족이 함께 시간을 나누는것이 첫째이다.

소비를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지말자.

소비를 줄이고 가족과 보낼 시간을 늘리자.

 

<간호사 브로니 웨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겐 5가지의 공통된 후회가 있다.

1)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인생이 아닌 내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살지 못한것.

2) 그렇게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3) 감정표현할 용기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면

5)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다면

 

우리는 남의 기준에 맞추어 소비하기위해 쉬지않고 일한다.

'성취'같은 가짜 행복을 진짜 행복이라고 믿고 산다.

매일 후회할 일만 하고 있다면 이제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때인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나라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

자발적 가난을 경험하고,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빌려쓰는 것을 택하며, 느리게 살기를 즐긴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느끼는 만족을 더 중요시 여긴다.

성공이나 성취보다 성숙을 추구하는 삶이다.

 

"자발적 가난을 통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공정하고 지혜로운 삶의 관조자가 될 수 있다."

- Henry David Thoreau (사상가 겸 문학자) -

 

"우리는 '가난'과 '재앙'을 동의어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가난은 행복의 원천이다"

- Leo Tolstoy (사상가 겸 소설가) -

 

Marcus Aurelius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가 말했었다.

자발적 가난 = 그것을 놓아줄 준비가 된 후에 거만하지 않게 부와 번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자발적 가난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정역활을 하는 것이다.

 

"삶의 군더더기, 불필요한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인식하고 집중적으로 즐길때 기쁨이 극대화된다는 것."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 Alexander Von Schonburg (칼럼니스트) -

 

"가진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이고, 가진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하다."

 - Alexander Von Schonburg (칼럼니스트) -

 

 

"우리는 아이들의 놀이방을 온갖 인형과 장난감으로 채움으로써 아이들의 진짜 장난감이 되어야 할 해와 달, 동물, 물과 돌같은 풍부한 자연으로 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 Ralph Waldo Emerson (미국 철학가) -

 

미국 정리 전문가인 Jennifer Berry의 책 <우리 집 정리 플래너>에서 이런 말 이 나온다.

"삶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물건이 당신의 삶속에 들어오면 그것을 즐기고 잘 활용하되 때가 되면 미련없이 놓아주어라.

어떤 물건이 당신 손에 있다고 해서 그게 영원히 당신 소유라는 법은 없다.

당신은 삶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물건의 임시관리인일 뿐이다."

즉,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시간 동안 물건과 관게를 맺는 것이다.

 

물건과 마음이 가장 잘 정리된 상태는 무엇일까?

일상에서 고르자면 여행하는 순간 트렁크 가방 한개에 필요한 것을 고르고 골라 넣으면 더 이상의 물건을 필요없다.

결과적으로 정리는 '공간'이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의 문제이다.

프랑스 수필가의 Dominique Loreau의 책 <심플한 정리법>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면 '제대로 갖기'를 조언한다.

즉, 그저 그런 여러 개보다 하나라도 멋진것을 가지라는 것이다.

 

단식은 심플한 라이프의 실천 방법.

"먹고 마시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며 영혼의 행복이다."

단식하면 부차적인 노동을 줄인다.

설거지 ↓ / 쓰레기 ↓ / 정화시키는 지구의 노동 ↓

그렇다고 해서 먹는 즐거움을 잃어서는 안된다.

단식의 스트레스가 음식의 즐거움까지 앗아간다면, 그런 단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이어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Brand Pilon의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에서

식품 광고/ 마케팅 떄문에 '먹지 않는다'는 행위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먹는다'는 행위는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었다.

 

공유경제, 소유에서 대여로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신무소유의식'이 시작되었다.

ex) airbnb / Rebitar / socar

 

단순히 삶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일이었다.

가족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가정의 성공이 안정적인 풍요로움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돈을 위한 가족의 희생보다 안락한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해지는 분위기가 조정되어 간다.

성취 욕구를 내려놓고 소소한 행복에 빠지자.

 

Erich Fromm의 <소유냐 삶이냐>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읽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봐 항상 걱정하게된다.

도둑을 두려워하고, 경제적 변화, 혁명, 병, 죽음을 두려워 한다.

사랑을, 자유를 성장을 변화를, 그리고 미지의 것을 두려워 한다.

따라서 나는 끊임없이 걱정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다른것들도 잃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까지 겹쳐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더 잘 보호 받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때문에 나느 방어 테세를 취하고, 고집스러워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외로워진다.

 

차가 없으면 차 할부금 / 세금 / 보험료 / 기름값 / 통행료 / 주차료 / 정비료 / 운전의 노동력 / 등등 이 모든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편리한이 곧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삶은 오히려 적당한 불편함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 가난 = 성장논리에 중독되어 과도한 부를 추구하는 현대인이 부를 늘리는 대신 욕망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진정으로 충만한 삶을 찾자는 개념.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면 몸은 움직여야하고 불필요한 소비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자발적 불편도 같은 취지의 개념이다.

'적당히 불편한 환경을 만드는 게임'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억지록 하면 노동이고 즐거우면 취미라는 말도 있다.

스스로 적당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레고 놀이와 같다.

 

자기아이에게 맛있는 음식, 비싼 옷, 비싼 장난감을 선물하기보단 그 노동의 시간을 줄여서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자.

오히려 적당한 물질적 결핌핍 좋은 교육일때도 많다.

아이마다 자기의 속도가 있다.

조바심은 피곤함만 불러올 뿐.

 

물건을 사고, 모르고, 쌓아두고 다시 돈 벌러나가고...

돈을 벌어 소비하는 것인지, 소비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모르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라.

소유한 물건으로 인생을 채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자들 입에서 불행하다는 소리가 없을테니..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한 인생은 피로감만 커질 뿐이다.

 

쇠젓자락을 쓰면 매번 설거지를 하는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나무 젓가락에는 나무를 잘라내고 가공하고 운반하고 판매해야하는 노동력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만의 세상'이 아니라 '세상속의 나'를 고민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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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꿈꾸고 사랑하고 열렬히 행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Simon Sinek

 

 

옮김: 이영민

발행: 2015.12.20

발행처: 타임비즈

페이지: 300 pgs

왼쪽부터 설명하자면,

2.5% → Innovator

= 새로운 제품/아이디어를 탐구하며 진보적 기술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

= 목표는 '1등'이다.

= 전체 인구 중 극소수, 그들은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방식이 매우 차별적이고 도전적이다. 

13.5% → Early Adapters

= 직접 아이디어를 생산해내지 않는다.

= Innovator와 같지는 않지만, 두 집단은 직관에 매우 많이 의존한다는 면에서 유사성이 있다.

= 직감을 믿는다.

= 신기술을 향유하기 위해 자진해서 웃돈을 더 얹어주고 약간의 불편정도는 기꺼이 감수한다.

= 자기가 '이거다!' 시픙ㄴ 아이디어가 있을땐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 이들이 아이폰을 처음 선보였을때 몇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 이들이다.

   ( 1주일이 지나면 집근처 매장에 즉각 구매가 가능한데도 말이다.)

= '1등'을 원한다.

=그냥 DVD를 안사고 더 비싼 Blueray DVD를 사는 이들

34% / 34% → Early Majority / Late Majority

= Laggards (느림보) 라고도 불린다.

= 다이얼 전화기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된후 버튼식 전화기를 구입하는 이들이다.

= 합리적 요소를 더 중요시 한다. (좀 더 실용적이다.)

= Early Majority 는 새로운 아이디어/기술들을 비교적 편하게 받아들인다.

= Late Majority 는  새로운 아이디어/기술들을 비교적 편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

 

갈수록 신념이 비슷한지 알 수 없는 고객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더욱 그들에게 에너지를 쓰지말고 상대가 어디에 속하는지만 알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Lotalty'(충성심) = 이것이 높다는 것은 거래를 위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웃돈까지 흔쾌히 지불하려든다는 의미이다.

 

어느 기업이든지 10%는 별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수치다.

기업을 키우려면 = 새로운 혁신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가 필수이다.

(곡선의 중간 부분만 공략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러니 10%는 시스템의 티핑 포인트가 되긴 불충분하다.)

더 많은 PPL이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Chasm' 개념이 와야한다.

각 Section 마다의 간극, 건너긴 힘들지만, '왜'를 안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우리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 해줄 것이다.

보상/인센티브가 있건 없건간에 말이다.

그래서, 인플루언서에게 경제적 보상따위가 필요없다.

보상이 오히려 조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나중엔 진정성을 파괴한다.

나중에 이들이 권유와 추천은 자신들을 위한것이 아니였음을 간파하게 된다.

신뢰는 무너지고, 인플루언서의 가치도 무용지물이 된다. (티보 TV 같이 말이다.)

 

Steve Ballmer 와 Bill Gates

에너지는 동기부여를 해주지만 카리스마는 영감을 불어넣는다.

카리스마 = 더 큰 목적이나 대의를 향한 불멸의 신념

Bill Gates는 열정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불멸의 낙관덕이다.

그리고 누구든 회상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생활하고 일하게 해주면 어떤 낙관이든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의 낙관이고, 우리는 거기에 이끌린다.

"PC on every desk"

카리스마는 에너지와 관련없다.

'왜'의 명료함에서 나온다.

동기부여 (보너스,승진, 등)은 에너지를 높여준다.

하지만 카리스마와는 상관이 없다.

'Why' ← 리더는 맨위에 앉아있다.

'How'/'What' ← 여기에서 윤활유가 되줄 사람을 찾아야 되지만, 물론 'Why'가 같아야 한다.

 

이 꼬깔을 나팔 처럼 바람을 불면 '왜→어떻게→무엇을'을 시장에게 소리를 보낼 수 있다.

이 소리를 통해 '왜'가 같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 결과로 후원/투자도 들어 올 수 있는것이다.

 

왜/어떻게← 변연계

무엇을 ← 신피질

왜/어떻게/무엇을 ← 조직 (계층적 조직화)

그 밑은 시장 (비계층적 혼돈 상태)

 

예) 슈퍼마켓에 갈때도 '왜'를 안다면 다른거에 매혹되지 않고 살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사는가/하는가에 따라 내가 뭘 지향하는 사람인줄 알 수 있다.

예) 건강에 관심있는 사람은 사도 건강에 관련된 것을 살 것이다.

이렇게 추측이 가능해진다.

 

수많은 돈을 가진 사름들에게 물었다.

물었더니,

재무목표 달성한 사람 = 80% (100명 중 80명)

그리고 재무목표를 달성한 사람들(80%=80명)에게 물었다

스스로 성공을 느끼는 사람?

80명 중 18명만 그렇다고 말했다.

즉, 탁월한 기업가들은 '사업'이라는것이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것을 뛰어넘는 일임을 깨닫는 인생의 지점에 도달해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하지만 행복에 가까운 요트를 구입할 수 있다."

요트=성취

더 중요한 것은 성공을 추구하는 동안 성취를 최종 목적지로 착각해버리기 쉽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ex) Microsoft도 균열의 지점이 왔었다.

"PC on every desk" 성취 후 '왜'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즉, 지금이 제일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왜'를 명료하게 가다듬고 영감을 다시 찾자!

AOL처럼 될 수 있다. 조심.

ex) 스타벅스→초창기→'제 3의 장소' ('왜'가 성립되었다.)→ 도자기 그릇의 유지비용이 비싸다

→ 종이컵으로 교체됨. → 이제 들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 '제 3의 장소'의 의미가 희미해짐

→ 2000년 슐츠가 떠나자 악화됨. → 2008년 초 다시 슐츠 돌아옴 → 스타벅스 되살림.

슐츠가 돌아오면서 말했다. "우리 모두가 스타벅스에서 진실로 경험한 유산과 전통, 열정을 환기시키기 위해 변화가 절실히 필요함"

'Why'는 성취하고 싶은 일을 내다보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고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시장조사/인터뷰도 아니다.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아야 나온다.

'왜'를 찾는 것은 발견의 과정이지 발명이 과정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할때는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경쟁할때는 모든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한다."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6개월 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6개월 후에 저희가 하는일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일보다 너을것이고요. 매일 '왜'를 상기하며 일을 하기때문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영감을 주는 일을 해내도록 영감을 북돋기 위해 출근합니다. 우리가 혹시 경쟁사보다 더 나은가요? 우리의 신념과 강신의 신념이 같고, 우리가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여기신가면 우리가 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와 믿는바가 다르고 미심쩍다면, 우리는 나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와 신념을 함께하고 협력해서 서로 성공할 수 있느 고객을 찾아내는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라고 나아갈 수 있는 이들을 찾고 있습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더 달콤한 거래조건을 타진하는데에는 관심없습니다,. 여기 우리가 설정한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실핼하고 있는 일은 있습니다만..."

이것이야 말로 가슴설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Based on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꿈꾸고 사랑하고 열렬히 행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Simon Sinek

 

 

옮김: 이영민

발행: 2015.12.20

발행처: 타임비즈

페이지: 300 pgs 

 

더 깨끗하게 하는 세제를 연구하는건 무의미다.

즉, 눈에 보이는 요소들을 뛰어넘는 무언가에 좌우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빨래를 깨끗하게 해주는게 당연하다.

그게 세제의 역활이다.

세제를 사는 고객들은 그것이 얼마나 잘 세척되는걸 보고 산게 아니라 빨래후 특유의 신선하고 개우한 냄새로 판단헀다.

즉, 깨끗히 빨렸다는 느낌을 선호한다.

얼마나 잘 세척됬나를 보는 사람들은 드물다는 것이다.

세제라면 빨래를 깨끗하게 해주는게 당연하기에.

 

변연계의 위력은 믿기 힘들정도다.

직감에 의한 의사결정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일까지도 하게 만들 수 있다.

예) 편안하고 안락한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캠핑을 즐기는 경우.

예) 이미 거대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사업을 꾸리고 싶어하는 경우.

예) 혼다 vs 페라리 = 당연히 페라리

예) HP or Dell vs Apple = 당연히 Apple

예) 각종 어린이 교육용 교재 vs 디즈니 교육용 교재 = 당연히 디즈니

예) 학교/교실 좌우명을 예를 들면

성실 → 항상 올바르게 행동하라 → ?

What → How → Why

명사만으로 변화를 꿈꿀 수 없다.

정말 효과적인 가치나 지침을 원한다면, 동사, 추구하는 가치를 동사로 표명하면 개념이 분명해진다.

 

진정성이 성공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거운 성공을 지속시키고 싶을때는 꼭 필요한 조건이다.

다시 한번 '왜'

즉, 신념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정성은 실제로 믿고 있는 바로 말하고 행동할때 생겨난다.

현재 하는 일 / 조직 or 재품의 존재이유를 모른다면, 하는 말과 행동이 대의명분과 일치하는지 알아야 한다.

예) Delta vs Southwest

예) 데이트 때도 같다. "저는 굉장히 부자입니다.' 등등 '무엇을' 먼저말하는 X

애프터 신청도 1~2번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유지가 더 많이 비용을 지불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조종으로는 신뢰를 쌓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신념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그 신념을 통해 얻은 '부'나 '이익'을 말하면 O.

(왜 → 어떻게 → 무엇을)

예) 미국의 신념(미국의 문화) = 기업가 정신, 독립정신, 자존 등을 이상적 가치로 소중하게 여긴다.

프랑스 문화 = 자아간 융합, 집단 의존, 즐거운 인생 따위를 이상적 가치로 소중하게 여긴다.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를뿐이다.

그래서 각각 개인들이 소속감에 따라 이민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예) 누구에겐 성당을 짓는게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좋아하는 일일 수 있다.

'왜'가 없는 사람은 보수에 따라 직업을 바꿀 수 있지만

'왜'가 있는 사람은 보수를 더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더 높은 대의명분의 일부가 되기 위해 그 곳에 남아 더 오랫동안 일을 할 것이다.

예) 숭고한 대의 명분에 이끌렸던 Thomas Edison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구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을 찾지 못한게 아니다.

전구를 만들 수 없는 1,000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예) Herb Kelleher (Sothwest 회장) 은 말했다.

"직원이 먼저입니다.

직원들이 제대로 대접하면 직원들이 바깥세상을 향해 제대로 대접하고,

바깥세상은 우리 회사의 제품을 다시 이용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행복해지는 것 이구요.

이것이 진짜로 효과적입니다.

결코 어려문 문제가 아닙니다."

 

Based on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꿈꾸고 사랑하고 열렬히 행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Simon Sinek

 

 

옮김: 이영민

발행: 2015.12.20

발행처: 타임비즈

페이지: 300 pgs 

 

Theme 2. 마음을 움직이고 성취를 만들어내는 일의 작동원리

골든서클을 찾아라!

Golden Circle (황금 원) = 리더들의 일종의 패터

What =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 조직은 자기들이 '무엇을'하는지 안다.

크든 작든, 분야가 무엇이든 무관하게 말이다.

자기들이 무엇을 파는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 어떤 일을 하는지 쉽사리 설명한다.

'What'은 알기 위운 영역이다.

How = 자기가 일을 '어떻게'하는지 안다.

특별한 판매 제안.

타 회사보다 무엇이 어떻게 더 낫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들은 대부분 종사자들은 안다.

'어떻게'를 훌륭히 잘 설계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고객이나 대중의 마음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Why = 기업이든 거기에 몸담은 개인이든,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 망설임없이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Why?"라는 질문이 원한는 것은 이유, 목적, 신념같은 것이다.

당신 회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매일 아침 당신은 무엇을 위해 달콤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가?

그토록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개의 조직, 사람들은 Golden Circle의 바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탁월한 기업은 그렇지 않다.

리더 또한 그렇지 않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즉 중심부터 출발한다.

모든 것은 ‘왜?’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 We make great computers. They are beautifully designed, simple to use, and user-friendly.

Wanna buy one?

이 것과

Everything we do, we believe in challenging the status quo, we believe in thinking differently.

The way we challenge the status quo is by making our products beautifully designed, simple to use, and user-friendly.

And we happen to make great computer. Wanna buy one?

위에 것과 밑에 것을 비교해보자.

그저 정보 순서를 뒤바꿧을 뿐인데 사고 싶다는 열망이 더 생긴다.

그 어떠한 속임수도, 조종도, 광고도 없었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하는지를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왜'하는지를 알고 구매한다.

소비자들이 Apple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Apple은 어떤 분야든지

'Think Differently'를 실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신뢰한다.

 

MP3 플레이어를 예로 들면,

Zen 이라는 회사는 "5gb MP3 플레이어"라고 광고했다.

Apple 회사는 "주머니속의 노래 1,000곡"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점은 Apple은 왜 필요한지를 말했다.

Creative 회사는 '무엇을' 내세워서 그런것이다.

Ipod이 '왜' 필요한지를 정하고 나서 '무엇'이 필요한것이다.

'왜' → MP3 플레이어 용량 → 색상 → 등등

하지만 Ipod은 "Zen"보다 더 나은 제품일까?

아니다.

배터리도 바꿀 수 없었고, 가끔식 아무 이유없이 제멋대로 꺼지곤 했다.

 

Dell / Gateway / 등등 시도했지만 Fail

Apple, 2007 → Apple Computer Inc. → Apple Inc. 로 회사 이름이 변경되었다.

더 이상 컴퓨터 회사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존재의 근원을 관통하는 철학이라는 토대

 

번연계 (Limbic Brain) = 신뢰와 충성심 따위의 모든 감정을 담당한다. 언어처리하는 능력이 없다.

신피질 (Neocortex) =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 언어를 담당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두뇌 영역에는 언어능력이 없기때문에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단절 때문이다.

예) 왜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 했냐고 물으면,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예쁘고, 잘생기고, 돈이 많아서, 유머감각이 있어서 등, 수많은 이유가 조각들을 구성하는근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진짜 왜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말로 표현하려면 그저 변죽만 울린 뿐이다.

그 이유 때문이라면, 세상에는 예쁘고, 잘 생기고, 돈이 많고, 유머감각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사람인가?

진짜 이유, 그 감정은 말로 옮기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계속 다그치면 빙빙 돌려 말하기 시작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이유까지 들먹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유를 몰라서가 아니다, 자기가 한 결정의 근거를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감에 따른 결정'이라는게 있다.

그냥 '이거야!'하는 느낌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모두 번연계에서 일어난다.

의사결정을 설명할때 '느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① 번연계의 위력은 강하다.

이성을 총동원해 상ㅇ황을 분석적으로 이해했음에도, 가끔은 이를 거부하게 할 만큼 강하다.

모든 세부정보에 위배되는데도, 우리는 종종 직감을 신뢰한다.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직감을 믿는다.

과학보다 예술을 앞세운다.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얻는다.

'왜'로 시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② Richard Destak 작가의 'Naked Brain'이라는 책에서,

신피질만 사용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강제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과도한 분석으로 인한 마비상태'에 도달하고 만다.

이성만 사용해 내리는 결정은 시간도 더 오래 걸릴뿐더러 결과도 나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예술 ↔ 번연계

과학 ↔ 신피질

 

③ 예) 전자매장에서 Flat Screen TV를 구입하려 한다.

통로에서 LCD / Plazma TV의 차이에 대해 전문적인 설명을 듣고 있다.

영업사원은 여러 차이점과 특장에 대해 합리적인 정보를 주고 있지만,

당신은 어느것이 더 좋은지 여전히 알 수 없다.

1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단서를 잡을 수가 없다.

과도하게 생각하느라 머리는 과부하 상태가 된다.

결국 선택을 하고 매장을 나오지만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얼마 후 친구집에 갔다가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다른것'이 거기에 놓여 있는걸 본다.

친구는 그 TV를 자랑한다.

갑자기 질투가 난다.

그거랑 내꺼랑 조금이라도 나은지 어떤지 여전히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의구심이 든다.

"내가 잘못 샀나?"

 

 

Based on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꿈꾸고 사랑하고 열렬히 행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Simon Sinek

 

 

옮김: 이영민

발행: 2015.12.20

발행처: 타임비즈

페이지: 300 pgs

 

Introduction - 지금 '왜?'라고 물어라

Dell / Nokia / etc vs Apple

etc vs 마틴 루터 킹

새유얼 피어폰 랭리 vs 라이트 형제

거대한 장비/자금/박식한 일꾼들 가지고 있었지만 왜 결국 라이트 형제가 성공을 하게되었는지?

''이라는 답은 적절하지 않다. '' 성실 했다는 답도 어울리지 않는다. 둘다 의욕이 넘쳤고 예리한 과학적 두뇌를 소유했지만 왜?

비관주의자의 말은 대개 옳다.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낙관론자다.

'무엇을' '어떻게'만 묻는 사람과, ''를 묻는 사람의 차이다.

Theme 1. 태초에 당근과 채찍이 있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 2가지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만들거나 or 기꺼이 그렇게 하게 만들거나.

다른 말로 = 조종 (Manipulation) or 영감 (Inspiration)

조종 1. 가격 - 중독을 유발하는 조종 전략

재고정리를 위해 가격을 내려서 판매하는 것.

단기수익은 거대하겠지만 지속적으로는 X

그 이유는 싼 값에 구매자들은 중독되었기 때문

조종 2. 프로모션 - 선의가 아닌 의도된 함정

) Cash-back / 1+1 / 무료증정

결국엔 구매자들은 여기에 중독되어 프로모션이 아닌 것은 사지 않으려 한다.

조종 3. 두려움 - 설득을 위해 사용하는 바나나 권총

“36초마다 누군가는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너무 늦기전에…”

보험회사 광고, 즉 광고로 두려움을 촉발해서 판매하려는 것.

조종 4. 열망 - 손쉽게 목적지에 도달시켜준다는 거짓말

행복한 인생을 위한 6단계 기술

꿈에 그리던 몽매를 6주에

열망을 자극하는 말로 헬스클럽 회원권을 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주 3회씩 꾸준히 가게 하려면 영감이 필요하다.

조종 5. 집단 압박 - 나만 뒤처져선 안 된다는 불안에 호소

경쟁업체 70%가 이걸 쓰는데 왜 당신 회사는 쓰지 않냐?”

상대에게 압력을 넣어서 구매하게 만드는 것 (Peer Pressure)

조종 6. 트렌드 혹은 혁신_ 포장을 달리한 낡은 것

콜게이트 치약 → 2 종류 → 경쟁회사 때문에 → 신제품 만들기로 함 → 미백용 / 치석제거용 / etc → 현재까지 32개 만들어짐.

기능만 추가되었지 창조된 것은 없다.

1970년대보다 우리가 양치질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이 만들었 까? 결국 혁신 탓에, 나에게 맞는 치약을 고르기란 불가능해졌다. 기업은 혁신이라 말하지만, 조금 새로운 것뿐.

 

조종으로는 충성심(Loyalty)’를 만들 수 없다.

조종은 비즈니스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흔히 사용됨.

조종은 거래를 만들 수 있으나, ‘충성심을 만들 수 없다.

불황이 닥치면 기업실체와 조종의 대가가 알몸을 드러낸다.

) 9.11사건이 일어남 → Southwest 고객들은 $1,000 or 수표 등 → 도움이 되라고 고객한테 받은 돈으로 회사를 회생시킨건 아니지만, 고객들이 이 브랜드에 품은 감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충성심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상 가장 수익성 높은 항공사의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조종에 의존하면 어떤 제품/서비스/회사 등 고를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조종은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의 중심에 놓으면, 그 결과는 희생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서는 조종이 표준이 되고 말았다.

리더 = 상상력을 불어넣고 긍정적이며 지속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고, 그것을 통해 많은 이들이 번영을 누리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

리더 =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통하고 관계 맺는 고유의 스타일.

 

 

Based on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 옆에 있는 사람

 

저자: 이병률

발행: 2015. 07. 01

발행처: 달출판사(주)

페이지: 312 pgs


작가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이다.

딱 잡았을 때 한속 가득한 느낌이 느껴져서 읽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릴 때는 책 읽는 걸 그렇게 원하진 않았고 책들은 다 두꺼워서 싫었는데 지금은 두껍지 않으면 되게 아쉽고 서운하다.

그리고 그 작가의 글을 많이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우리 한국은 책을 너무 잘 만들어서 질이 거의 월클(월드클래스)이다.

요즘 책 가격이 거의 13,000원 이 넘는 고가의 교양의 물품의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책은 7,250원이라 적혀 있다.

 

이 책은 흔한 외국책을 만지면 느껴지는 재활용 종이를 써서 그런지 가격이 싸고 거기서 300장이 넘는 장문이라 더 좋았다.

재활용 종이라 그런지 투박한 물자들이 엮여있는걸 보면 되게 친근하 다할까.. 

위에 그림들이 인쇄되어 있으니까 편안한 느낌이 든다.

마치 한옥에 있는 문에 붙여 놓은 한지같은 느낌.

나무의 결정들이 마구잡이로 엮여 있는 모습이 상당히 아름답다.

재활용 종이를 이용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 때 깃털처럼 가볍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고 목차도 없으며 프롤로그 등 아무것도 없고 바로 글이 시작된다.

 

 

읽다 보면 곳곳에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작가가 찍은 거 같은데 좀 글 이랑 사진이랑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각 섹션마다 이야기들이 다른데 무슨 소설같은 느낌도 나면서 읽다 보면 좀 많이 길었으면 좋을 것 같은 내용들이 많다.

작가가 꿈인 사람이라면 각 섹션마다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긴 소설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읽을수록 상상이 나서 점차 궁금해진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 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 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 을요.

 

풋풋한 사랑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읽을 만하다.

가을 아침에 일어나 읽게 되면 따뜻해지는 책이다.

조용하고, 한가하고 뭐 그런 느낌?

 

매일 기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주인공은 사람만보고 살려고 하는데

결국 사람 때문에 싸우고 토라지게 된다는

사랑하면서 살아도

사랑은 사람보다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기에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 같기에 그 것만으로도

사람은 아름답 단다.

결국 내 옆에 사람이 되어 달라고 한다.

Based on 내 옆에 있는 사람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법정 & 최인호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법정→천식→기침 때문에 잠에서 깨어남

→감사함을 느낌→기침 때문이라도 일어나서 경전을 읽을 수 있기에

→이럴듯 행복은 가까이에 존재함.

[소육지족]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사랑은 내 마음이 더 자비로워지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해주려는 것.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에 고통이 따르는 것.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따뜻한 정 = 순수한 사랑.

엄마&자식 사이엔 탯줄 존재.

어떠한 상황에도 끊어지지 않음.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

 

인간관계의 기본 = 신의/예절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

헛소리일뿐, 사랑의 방법을 모르는 것.

짐승들이 서로의 상처를 햝아주듯이, 가정은 서로의 온갖 상처와 불만을 치유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서로 할말은 하고, 또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하는 곳이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정도 이것을 못하는데 사회에 나와 언론의 자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인가?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너희가 지금은 죽고 못 살 만큼 서로 좋아하지만 속상하면 못할 소리가 없다.

아무리 속상해도 막말은 하지말아라.

막말을 하게되면 상처를 입히고 관계에 금이 간다.

자기가 말한 것에 대헤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막말은 하지말아라."

육신의 나이로 아이를 생각해서는 안되지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어쩌다 귀찮아서 소홀히 대하면 바로 느끼고 아이가 반격을 해옵니다.

이런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는 말, 그런 명은 아이에게서 어른이 배워야 할 점.

 

"난 무엇이 되고 싶지 않고 난 나이고 있다."

진짜 아닌 위장된 본체가 아닌 그런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대부분 가짜의 나조차 사랑을 해요.

쉽진 않지만 모든 사람이 남에게 보이는 자기 모습에 온정성을 쏟고있다보니 본래의 '나'가 상실되는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데, 남을 닮으려고 하는데서 병이 발생함.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말→습관→성격→운명을 이룬다."

좋은 말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고, 반대론 나쁨은 나쁨을 맺겠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준비도 안하는데, 그런 상태에서의 죽음은 느닷없는 피살과 같아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 수록 우리의 인생은 깊어진다고 본다."

 

'여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다.'

라는 제자들의 변명들이 아주 재미있는데,

이 말은 사실 우리 입에서 늘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많고 가진게 많기 떄문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굉장히 사랑한다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물질/시간/노력도 나누게 합니다.

그런 뜻에서 나눔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너와 나'의 관계 회복이 먼저입니다.

 

"거짓없는 사람이 되도록, 완전히 거짓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만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만을 멈추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하죠.

 

육신이 늙거나 죽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명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주어진 시간과 힘을 어떻게 쓰고 있느냐,

또 이것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영춘화)라는 꽃, 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입니다.

이름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이지요.

'설중사우'라고 하여서 눈을 맞으며 피는 이른 봄, '조춘'의 대표적인 꽃이지요.

꽃잎은 해마다 피고 떨어지지만 꽃은 영원히 지지않는다.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

 

"어린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을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이라고 여기고 있더구나.

이 우주의 근원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죽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죽은도 삶의 한 과정이니까.

어린왕자, 너의 실체는 그 묵은 허물 같은것이 아닐까?

그것은 낡은 옷이니까.

옷이 낡으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우리 육신도 그럴거야.

그리고 네가 살던 별나라로ㅗ 돌아가려면 사실 그 몸뚱이를 가지고 가기에는 거추장스러울거다.

그건 내버린 묵은 허물 같을거야, 묵은 허물.

그것은 슬프지 않아.

'이봐, 아저씨.

그것은 아득할거야.

나도 별들을 쳐다볼래.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거야.

모든 별들이 내게 물을 마시게 해줄 거야.

 

[미리쓰신유서]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자는 광경을 몇번이나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비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아레는 귗낳은 입국사증 같은것도 필요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최인호가 물었다.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법정이 답헀다.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

둘은 웃었다.

 

작가 최인호는 건강상의 문제로 이 일을 미루어 두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병이 깊은 중에도 법정스님의 입적시기를 전후해 책을 펴내라고 유지를 남겼다.

 

Based on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우린 왜 항상 죽음에 전전긍긍하고 있을까요?


얘들아 고개를 돌리지 말고 무상에 직면하라

- 싯다르타, [열반경] -


죽음에대해 무서워 하지 마세요.

삶을 제대로 못 살아 낸 것을 무서워 하세요.



Tamara de Lempicka, "Self portrait in the green bugatti", (1925)

"탐욕(avaritia)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돈에 대한 갈망은 지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체제 아닌가.

이제 돈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한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절대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절대적인 수단은 동시에 절대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이미 돈은 하나의 숭고한 목적으로 승격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돈을 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돌아보면 우리가 대학교와 전공을 정하는 것도, 취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한 것 아닌가.

돈만 있으면 여행도, 물건도, 행복도, 사랑도, 심지어 애인마저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깅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친구가, 애인이 내게 친절한 건 내게 돈이 있기 때문일 수 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돈을 신처럼 숭배한다면 말이다.

결국 돈이 없다면 친구든 애인이든 모두 나의 곁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돈을 모으고 또 모은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심과 애정을 받기 위해 돈을 벌려고 했지만, 돈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직접적인 관계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마치 신에게 헌신하느라 가족과 이웃은 돌아보지도 않는 어느 우매한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이런 딜레마, 돈에 대한 갈망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있을까?

그것은 나름대로 최적생계비를 생각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목적의 자리가 아니라 원래 자리, 그러니까 수단의 자리로 만들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돈은 여행을 가려고, 맛난 음식을 먹으려고, 혹은 멋진 옷을 사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돈은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다.

바로 이것이다.

돈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있다.

최적생계비를 계산하고, 그것을 삶에 관철하는 것이다.

"됐어. 이 정도면 됐어. 이제 삶과 사랑을 향유해야지."

갈망에서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은 이렇게 내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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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수업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켜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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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딜롱 르동, "나비들", (1910)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사랑에 빠지면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주인공이 된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조연으로 물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종교와 정치적 신념 같은 관념들일 수도 있다.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조연일 때 우리의 삶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자신의 꿈과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하는 조연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사랑의 위기나 비극은 모두 사랑의 정의로부터 설명된다.

우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한 주인공이 아닐 때, 사랑은 비틀거리게 된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주인공으로 만들고, 남자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여자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는데 남자는 더 이상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 순간 사랑은 위태로워진다.

또 다른 위기는 두 사람 이외에 제 3의 것들이 조연의 자리가 아닌 주연의 자리로 떠오를 때 발생한다.

시부모가 무대를 휘두른다든가, 남녀 중 어느 한 사람의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중심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조연으로 강등되고 동시에 사랑의 기쁨도 조금씩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위기를 지혜롭게 그리고 단호하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유일한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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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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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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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민, "붉은 방", (2003)


"야심(ambitio)이란 모든 감정을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 정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욕망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야심에 동시에 묶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상한 사람들도 명예욕에 지배된다. 특히 철학자들까지도 명예를 경멸해야 한다고 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야심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특정 다수들로부터 시기와 관심, 그리고 찬양과 찬탄을 바등려고 한다.

나를 찬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찬양하기만 하면, 우리는 쓰레기와 같은 사람도 보석으로 둔갑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학창 시절을 한번 돌아보자.

다음과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첫 강의를 듣자마자 우리는 직관적으로 교수의 강의가 보잘것없다는 것, 심지어는 강의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리포트를 제출하고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교수가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교수가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제대로 인정해 준 사람이 이 만큼 훌륭한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논리가 심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야심이 강한 사람은 너무나 취약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칭찬해 주면 사족을 못 쓰는 아기와도 같다.

그러니까 강해 보여도 야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고 하고, 당연히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자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전쟁이라고 할 때, 이렇게 '지피지기'를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삶이나마 제대로 보존할 수 있겠는가.

직급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야심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러면 진짜 위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야심이 커질수록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감정들이 모조리 고사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야심은 아카시아나무와도 같다.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깊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아카시아나무 말이다.

그렇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야심은, 적절히 통제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마음속에 다른 수많은 감정들도 자기 결을 따라 제대로 자라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그 만큼 더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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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admiratio)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이 특수한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그 관념 안에서 확고하게 머문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항상 떠날 준비를 하라!

상대방에 대해 항상 자유로워라!

이것만큼 상대방이 나에게 무관심해지거나 심드렁하지지 않도록 만드는 확실한 방법도 없다.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가 있다.

이런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자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에만 상대방도 우리를 주인으로 대우할 것이다.

모든 경우에서처럼 주인은 관심을 받고, 노예는 무관심에 방치되는 법이니까.

"당신이 없다면 나는 살 수가 없어요!"

이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레토릭이지.

결코 사실을 묘사하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상대방의 뜻에 기꺼이 따르려고 하는 노예의 제스처는 글자 그대로 상대방도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제스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은 자신에 대한 나의 헌신이나 나의 자유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나는 상대방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또 상대방이 그런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상대방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내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떻게 대우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 기쁨을 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미워해도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것이고, 밀쳐내도 내게 안길 사람이라면 말이다.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헌신하는 것으로 사랑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만 생길 뿐이다.

내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한다고 상대방이 생각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읽으려는 노력을 접을 것이고, 그만큼 나에 대한 사랑도 식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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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deo Modigliani, "Christina", (1916)

소심(timor)은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큰 악을 더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소심함과 대담함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양극단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는 매사에 소심하게 된다.

반대로 결과가 항상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일에 대담하게 된다.

소심함이든 대담함이든 두 감정 모두 극단적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소심함에는 미덕이 한 가지 있다.

미래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소심한 사람은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항상 실패를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담함에도 예상하기 힘든 후유증이 있기는 하다.

미래를 너무나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기에 대담한 사람은 비관적인 결과가 발생했을 때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렇지만 미래란 항상 뜻댈 되지 않는 것이다.

미래는 나 자신과 타자가 씨줄과 날줄처럼 역이면서 도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스로 미래의 모습을 합리적으로 예측할지라도, 타자는 우리의 예측이상으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예측 자체를 무화시킬 수 있다.

그러니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해도 혹은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원인을 완전히 우리 자신에게만 돌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지나치게 대담한 사람에게는 소심함이 필요하고, 반대로 불필요하게 소심한 사람에게는 대담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만이 미래에 대해 균형잡힌 시선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소심함과 대담함의 중도, 혹은 중용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소심한 사람을 대담하게 만드는 하나의 행동 강령을 추천하고 싶다.

'아님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것이다.

소심함을 극복하려면 그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님 말고!'라는 쿨한 자세를 갖는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실천하는 것 마저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소심한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조금씩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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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 "Carnival Evening", (1886)

희망(spes)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inconstans laetitia)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곳에 반드시 가고 싶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렇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희망을 갖고 산다.

그렇지만 희망은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이 품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이들은 희망이 가진 불확실성보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갖게 되는 기쁨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음껏 희망을 품을 수가 있다.

반면 어른들은 희망이 실현되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그것이 지닌 불확실성에 더 신경을 쓴다.

여러 다양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이런 불확실성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까, 어른들은 삶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기꺼이 희망을 현실이라는 제단에 바치고 만다.

그러면서 우리는 희망에 부푼 삶이란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삶에 불과하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한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일종의 '신포도' 전략인 셈이다.

따먹기 힘드니까 아예 포도가 시다고 미리 폄하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포도를 따먹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은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걸 알고 있는가?

희망을 낮추거나 아ㅖ 없애 버리는 순간, 우리에게는 설레는 미래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이렇 때 그냥 하루하루 매너리즘에 빠진 삶만이 우리에게 남을 뿐이다.

커다란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조그만 희망들을 품어 보도록 하자.

"나는 화가가 될 거야. 멋진 우화를 그릴 거니까."

"나는 플라밍고 기타를 배울 거야."

"나는 마추픽추에 갈 거야."

"나는 키스자렛을 만나 그의 연주를 듣고 CD에 사인을 받을 거야."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내 마음에 희망은 더욱더 많아질 것이고, 그만큼 기쁨과 행복도 내 곁에 더 머물 테니까.



Amedeo Modigliani, "Chrisitna", (1913-1914)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기쁨(laetitia)의 정서를 쾌감(titillatio)이나 유쾌함(hilaritas)이라고 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정신과 육체에서 모두 기쁨, 즉 쾌감은 자주 찾아오는 경험은 아니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만 우리는 쾌감을 소망할 수 있다.

섹스, 춤, 그리고 스포츠가 쾌감을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춤이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섹스에서도 쾌감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몸에 기쁨이 찾아오는 경우에 우리는 정신에서도 반드시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로 정신의 기쁨이 필연적으로 몸의 기쁨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남자와 얼떨결에 섹스를 나누게 되었다고 하자.

기대하지도 않았음에도 우리는 너무나 흡족하게 섹스를 즐길 수도 있다.

섹스를 마친 후 그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남자로 보이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남자만 생각해도 전신은 기쁨으로 가득 찰 테니까 말이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 정신을 기쁨에 젖어들게 하는 남자가 있다.

기대감은 품은 채,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자.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섹스에 서툴 뿐만 아니라 전혀 상대방을 배려하지도 않았다.

그 후 과연 이 남자를 떠올렸을 때, 여자는 기쁜 감정을 품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의 몸은 항상 옳지만, 정신은 그릇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피노자가 "우리는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몸이 어느 때 행복을 느끼는지, 그리고 어느 때 불행을 느끼는지 계속 응시해야만 한다.

아무리 정신으로 "이럴 때 자신은 틀림없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해도 직접 몸으로 겪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Moise Kisling, "A Young Girl seated with Marguerites", (1950)

감사(gratia) 또는 사은(gratitudo)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사랑의 노력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할까?

물론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의 종류 중 하나가 아니다.

이루러질 수 있는 사랑이 있고,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우리 자신이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사랑이 어떻게 쉬운 감정이겠는가.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하는 법인데!

한 남자와 함께 있으려면, 가족들과 친구들을 놓아야만 한다.

심지어 목숨마저 요구하는 사랑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약한 사람에게 사랑은 삶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는 폭퐁우로 느껴지기도 한다.

약하디 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겠는가.

두려워 하는 것이 많아 이것 저것 따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고뇌와 고민은 항상 약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사랑 앞에서 복잡해져만 가는 생각 끝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사랑이 가져다 주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이기 쉽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 앞에서 고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에 몸을 던지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하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 행복했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더 이상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뿐.

이럴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저처럼 나약하고 모자란 사람을 사랑해 주어서 고맙다."라고.

"지금까지 너무나 행복했었다."라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가급적 다 해 주려고 한다.

하룻밤의 섹스를 원한다면 기꺼이 그와 잠자리를 함께할 수도 있다.

혹은 그가 평상이 원했던 근사한 자동차를 사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행복에 대한 선물이자.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Grandval Sophie, "Bird amongst flowers", (1979)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우리는 평생 내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타자는 너무나 쉽게 내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간혹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머리에 뭐가 묻었네요. 이리 와서 돌아봐요. 제가 털어 줄께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상의가 바지에서 빠져나와 있으면 나는 어김 없이 그에게 그 사실을 일러 준다.

이건 뒷모습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면을 타자는 마치 거울처럼 비추어 주기 때문이다.

사실 거울보다 수백 배나 더 좋은 요술 거울이 바로 타자라고 할 수 있다.

거울이 현재의 시작적인 모습만 비추어 준다면, 타인은 과거의 모습이나 미래의 모습도 보여 줄 수 있고, 심지어 나의 내면마저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던 장점을 보여 준다면, 나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나의 단점을 보여 준다면, 나는 우울해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경탄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어떻게 내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 그의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그래서 애인은 우리에게 다른 타인이 결코 줄 수 없는 자긍심을 되찾아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의 모든 면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좋은 친구 혹은 좋은 동료일 수는 있어도 말이다.

자신에 대해 자긍심이 떨어진 사람에게 유일한 치료약은 애인이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곘는가.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John Singer Sargent,"Carnation, Lily, Lily, Rose",(1885-1886)

경쟁심(aemulatio)이란 타인이 어떤 사물에 대한 욕망을 가진다고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내면에 생기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보통 우정은 동성끼리, 그리고 사랑은 이성끼리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정과 사랑에 대한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정과 사랑은 모두 어떤 타인과의 만남에서 기쁨을 느끼는 감정, 그러니까 자신이 과거보다 더 완전해졌다는 뿌듯함이 드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기쁨을 주던 사람과 헤어지게 될 때, 우리는 그제야 우정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다.

헤어져 있을 때, 우리의 슬픔이 어떤 강도로 발생하는지에 따라 우정과 사랑은 구분된다.

슬픔이 너무나 크다면, 아무리 우정이라고 우겨도 그것은 사랑이다.

반면 슬픔이 생각보다 작다면,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관계라 해도 그것은 우정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우정과 사랑은 질적인 차이가 있는 감정이 아니라, 양적인 차이, 혹은 정도상의 차이만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가져다주는 타자가 무어냐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일 수도, 동성일 수도, 개나 고양이일 수도, 혹은 슈베르트의 음악일 수도 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경쟁심은 반드시 개입되기 마련이다.

우정이나 사랑의 감정에 빠지면 우리는 상대방이 욕망하는 것을 나도 욕망하는 과정을 꼭 겪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점검하면 좋을 것 같다.

싫어하지 않는 어떤 사람과 묘한 경쟁 관계에 들어갈 때, 여러분들은 우정, 혹은 심하면 사랑의 관계에 들어서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단서가 중요하다.

하긴 미워하는 사람과 경쟁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손상기, "연인", (1978)

"박애(benevolentia)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커풀이나 가족 내부의 문제로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은사회적 차원의 문제에서 다루어져 왔다.

예수의 사랑도 그렇고, 싯다르타의 자비도 그렇고. 공자의 인(仁)도 마찬가지다.

사유재산 제도가 관철되면서 사랑도 사적인 영역으로, 결혼 제도와 일정 정도 관게가 있는 거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적인 차원에 국한되어 있든 공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든 간에, 사랑의 원리는 소유의 원리와 달리 무소유의 원리를 토대로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겨울의 찬바람에 애인이 떨고 있다면, 누구나 기꺼이 추위를 무릅쓰더라도 자신의 옷을 벗어 줄 것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최소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공동체의 범위는 우리가 자신이 가진 것을 어디까지 나우어주느냐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아무리 같은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 같은 도시나 같은 국가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공동체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원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공동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커플 사이에도 무소유의 원칙, 사랑의 원리가 희석되고 있는 불행한 시대다.

합리적인 것처럼 쿨하게 더치페이를 외치고,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바닥에는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강한 소유 의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커플이나 부부 사이에도 사랑의 원리가 훼손되어 있는데, 지역이나 국가 공동체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이런 시대에 전체 인류로 확장되는 사랑의 원리, 즉 박애의 정신이 어떻게 제대로 평가될 수 있겠는가.

연애에서부터라도 차근차근 사랑 연습을 하자.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시대니까.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Vilhelm Hammershoi, La Cour Intérieur, c.1905

"후회(poenitentia)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 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후회는 유아적인 감정이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데, 비가 오는 것도 자신이 울어서라고 생각하고 무지개가 뜬 것도 자신이 방금 사탕을 먹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이들은 세계의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자기 뜻대로 세상이 되지 않을 때 그렇게 쉽게 짜증을 내곤 한다.

후회는 불행한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릴 때 발생하는 검정이다.

그래서 후회라는 감정에는 자기중심적을 세상을 판단하는 유아적인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밎지 앉는다면, 후회라는 감정은 생길 수도 없다.

후회에 금방 젖어드는 사람에게는 대학에 떨어진 것도 오로지 자기 탓이다.

대학 정원 같은 구조적 문제라든가 학과 선택에 있어서 부모님의 강요 혹은 공부에 물도하기 힘든 가정환경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실연당한 것도 완전히 자기 탓이라고 믿는다.

애인이 더 멋진 이성을 만나서 자신을 떠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인이 학업 때문에 자신을 멀리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결국 후회라는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유아적 태도를 벗어나야만 한다.

이것은 물론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데로 인식해야 가능하다.

한마디로 타자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가능하다.

한마디로 타자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즉 타자의 타자성을 받아들여야 후회라는 감정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순간 우리는 몇 가지 지혜를 덤으로 업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소원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기치 않은 행복이나 불행이 나에게 올 수도 있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투르게네프 Ivan S. Turgenev 1818-1883

 

"비루함(abjectio)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보다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스스로 비하하니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라는 감정은 강한 자존감 없이는 쉽게 지킬 수 없는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루한 삶'은 결코 살 만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비루함의 감정, 혹은 그런 저오를 강하게 띠로록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는 대부분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스피나자가 비루함을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한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슬픔'에 주목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칭찬보다는 비난과 험담을 일삼았다면, 우리는 성장해서도 항상 슬픔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른 부모를 만났다면 충분히 칭찬받고도 남을 일을 했는데도 자신의 부모는 매정하게 그것을 폄하하곤 했다면 말이다.
"공부는 잘해서 뭐하니, 인간이 되어야지." "너는 엄마를 닮아서 구제불능이야, 피가 어디 가겠니."
이런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들었던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 대해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잘해도 비난을 받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행위를, 심지어 자신의 존재마저 무가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슬픔의 정조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 만들어진 슬픔이 하나의 습과처럼 내면화될 때, 우리는 자신을 항상 비하하는 감정, 즉 비루함에 젖어들게 된다.
습관화된 슬픔, 혹은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슬픔, 그것이 비루함이라는 감정의 실페다.
그만큼 비루함은 벗어던지기 힘든 감정이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애정과 칭찬이 있다면, 비루함도 조금씩 사라질 수는 있다.
자신을 쉽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 오랜 시절 만들어진 습관화된 슬픔을 그만큼 시간을 드여서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람,
즉 봄 햇살이 겨울 내내 쌓였던 눈을 녹이는 것처럼 그렇게 비루함이라는 고직적인 슬픔을 천천히 치유해 줄 사람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만이 비루함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법이니까.

Based on


감정수업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켜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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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민, "거울과 캔버스 틀 사이에서"

"끌림(propensio)이란 우연에 의해 기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너무나 서둘러 일찍 결혼하는 여성이 있다.

이건 그녀의 행복지수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한 가족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행복지수가 매우 낮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가조금만 잘해 주어도 금방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식충'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여자가 있다고 하자.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정말 맛나게 잘 드시네요."라고 친근하게 이야기한다면, 그녀가 어떻게 그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곧 가족을 떠나 그와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와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녀 는 금방 그에게 심드렁해질 것이다.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남자보다 조금 더 잘해주는 남자가 생기면, 그녀는 금방 새로운 남자에게 또 끌리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지만 그 대가로 화려한 연예인이 되는 데 성공했던 여배우들의 경우에 대부분 결혼 생활이 비극적으로 파탄 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끌림이 나의 과거 상태에 의존한다면,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내 입맛에 맞아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허기짐이 없을 때에만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의 삶 자체가 지나치게 블행한 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는 행복하도록 스스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Based on '강신주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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